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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난민·테러에 치인 EU, '자유로운 국경 이동' 막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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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내 이동 보장한 '솅겐조약'

독일·프랑스, 각국 사정에 따라 최대 4년간 적용 정지 추진

"테러에 악용… 현실과 안맞아"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 역내(域內)에서 국경 통제 없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을 자국 사정에 따라 최대 4년간 정지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솅겐조약은 유럽연합(EU), 유로화(貨) 등과 함께 유럽 통합을 지탱하는 3대 핵심 축으로 불린다. 대규모 중동 난민 유입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잇따른 대형 테러로 충격을 받은 유럽이 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그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타임스가 입수한 EU 비밀 외교 문서에 따르면,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비공개 EU 내무장관 회담에서 솅겐조약 회원국이 2년간 국경 통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예외적인 경우' 이 기간을 최대 4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예외적인 경우는 테러나 대규모 난민 유입 등으로 회원국이 심각한 안보 위협을 받을 때를 말한다. 독일·프랑스는 "테러 위협의 장기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현 솅겐 규정은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독일·프랑스는 회원국이 국경 통제를 실시할 때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브뤼셀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건 회원국이 언제든 자국 필요에 따라 국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솅겐조약은 긴급 상황인 경우 6개월간 국경 통제를 실시하고, 이후 6개월 단위로 3번까지 EU 승인을 받아 국경 통제를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솅겐조약 26개 회원국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5개국에 대해 일시적인 국경 통제가 허용되고 있다. EU는 이 조치를 올 11월 말 전면 해제할 계획이다.

솅겐조약은 대규모 난민 유입을 조장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악용되고 있다며 유럽 내에서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의 연쇄 폭탄·총격 테러, 독일 베를린 트럭 테러 때 범인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테러를 계획하고 도피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최근 "테러리스트들이 솅겐조약을 충분히 악용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유럽이 회원국 간 국경 통제를 강화하려는 데는 EU 경계에서 난민·테러리스트들을 차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U 국경 관리 기관인 프론텍스(Frontex)는 최근 "그동안 난민들의 주요 유입 통로였던 '발칸 루트'와 '지중해 루트'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스페인과 흑해를 이용하는 난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유럽이 아무리 바깥 경계에서 난민을 막으려 해도 '풍선효과'처럼 다른 유입 통로가 계속 개발되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EU 내 최대 영향력을 가진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솅겐조약 정지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이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더타임스는 "독일·프랑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노르웨이 등도 이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유럽 내에선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폭넓은 지지가 깔려 있어 찬반 논란이 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솅겐조약이 없으면 유럽도 없다"고 했다. 한 EU 최고위 간부는 "솅겐조약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건 바로 유럽인 전체"라고 했다. EU는 최근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솅겐 회원국으로 영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이 지난해 6월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을 때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 이주민에 대한 유입 통제였다. 영국은 그동안 "한 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주민은 10만명 이하"라고 밝혔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30만명이 넘는 이주민들이 별다른 규제 없이 입국했다. 영국은 오는 2019년 3월 공식적인 EU 탈퇴를 계기로 이주민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솅겐조약

유럽 국가들 간에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하지 않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조약. 유럽연합·유로화와 함께 유럽 통합을 지탱하는 3대 축이다. 1985년 룩셈부르크 솅겐에서 독일·프랑스 등 5개국이 서명했고, 1995년 발효됐다. 현재 유럽 26개국이 가입해 있다.

[런던=장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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