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토 북부의 오하라산소우 료칸에서 |
[옆집부부의 수상한 여행-42]"오빠, 우리는 참 운이 좋은거 같아."
"갑자기 왜 그래?"
늦은 저녁 료칸에 체크인을 한 뒤 이렇게 말하니 신랑이 어리둥절하며 반문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여행을 주제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시대와 온 인류를 통틀어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에 속한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사람이 지주의 재산으로 취급되던 예전에는 당연히 거주이동의 자유도 제한되었고, 그 옛날 떠돌이 집시가 아니고서야 여행이라는 목적으로 이곳 저곳을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유럽에서 여행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도 철도망이 깔리기 시작한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이후의 일이라고 하니...
![]() |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원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의 정찬 디너 모습. |
"응. 요즘에야 해외여행을 아무나 간다고들 하지만 여행이라는 행위가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서 대중화된 건 사실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니깐." 곧이어 신랑한테 물었다.
"여행이 대중화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 요소일까?"
"우선 교통망과 숙박시설이 갖춰져야 하고, 즐길거리나 여행명소도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고, 치안도 아주 중요한 문제일듯?"
차근차근 대답하는 모습이 귀엽네. 일본의 경우 산업화 전인 에도시대 때부터 이런 서민층의 여행이 발전했고 료칸문화도 이때부터 일찌감치 싹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사와 불사에 대한 참배가 그 원동력이었다고 하는데 "료칸이 일본 전통여관이래~"하고 그냥 묵는 것보다는 이렇듯 그 옛날 일본인들의 여행은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료칸의 맛이 더 사는 느낌이랄까.
![]() |
료칸 입구 |
사실 일본식 전통여관인 '료칸'이라는 것도 이미 엄청나게 대중화되다 보니 1박에 10만원 대 이하부터 100만~200만원을 훌쩍 넘는 료칸들이 많아서 숙소를 고를 때 단순히 일본 전통 료칸 외관만 흉내낸 여관류(?)만은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아 끝내 찾아냈다. 교토 북부 지방의 가성비 좋은 료칸을.
![]() |
방이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
아무튼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다다미가 깨끗하게 깔려 있고 이불이 잘 개어져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 호텔침대에서만 자버릇하다가 이렇게 직접 깔아야 하는 이불이 있으니 뭔가 어릴 때 추억이 난달까.
![]() |
거의 어딜가나 온천은 규칙처럼 여자 들어가는 곳은 빨간 천, 남자는 회색이나 파란 천이다. |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이불 깔기와 이불 개기의 추억을 가진 반 아날로그 세대지."
"응 맞아 맞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눈 뜨자마자 온천으로 향했다. 산골마을의 료칸인데도 어디 한 군데 흐트러진 곳 없이 단정하고 깔끔한 게 여기가 일본이구나 싶다. 다만 남탕, 여탕 위치 입구를 반나절, 하루 단위로 뒤바꾸는 곳들이 많으니 유의해야 할 것이다. 사실 어딜 가나 규칙처럼 여자가 들어가는 곳은 빨간 천, 남자는 회색이나 파란 천이니 구별하기 어렵진 않다.
![]() |
온천 실내. 익숙한 목욕탕의 광경이 펼쳐진다. |
"오빠, 온천 잘하고 1시간 뒤 여기서 만나."
약속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목욕탕의 광경이 펼쳐진다. 다만 왜 목욕탕에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며 의자들이 없어서 그런지 왠지 깔끔하게 느껴졌다. 바닥의 조명이며, 구석구석 놓인 장식이며 아기자기하게 느낌을 다 살려 놓는 걸 보면서 그래 이런게 이 나라 특징인지 싶다. 고요한 아침에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몸이 축 늘어진다.
![]() |
밖에 나오면 노천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
'그래 이런게 힐링이지. 그동안 너무 일만 하고 살았어...직장상사한테도 이런데 좀 오라고 하고 싶네. 과연 그 일 중독 부장이 이런 즐거움을 알까 싶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시 명상에 잠기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녹여냈다.
![]() |
야외온천에서 잠시 명상에 잠기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녹여냈다. |
온천을 끝내고 아침 조식을 먹으러 1층 대합실에 내려오니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 료칸은 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 조식을 주는데 우리 부부는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이라 오전 조식만 포함해서 15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자리는 좌식이 있고 입식 테이블이 있는데 우리는 입식 테이블로 배정이 됐다. 신랑이 한마디 했다.
"서양 사람들은 좌식 테이블에 앉으면 좌불안석 어쩔 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의자에서만 생활해서 바닥에 앉으면 허리 아프다는 사람을 많이 봤어."
![]() |
료칸 가격이 호텔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보통 온천보다는 식사때문이다. |
료칸 가격이 보통 호텔보다 훨씬 비싼 것은 온천보다는 이러한 식사에 있다. 수준 높고 정갈하게 나오는 일식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이 식사를 방으로 날라다 주는 것이 원래의 료칸인데 객실 위생문제와 가격 등을 이유로 요즘에는 이렇게 별도 식사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 |
온천에서 몸담그고 혈액순환이 잘되어서인지 밥 두공기 먹는 신랑. |
"여기는 특이하게 밥은 항상 자율 배식이네. 사람들이 밥을 많이 찾아서 그런가 봐."
"그러게. 온천에서 몸 담그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그런지 밥맛이 좋네. 한 그릇 더 먹자."
![]() |
만족스러운 자세. 갑자기 요상한 포즈를 취한다는 건 대개 기분이 좋을 때다. |
이 날 관광을 위해 식사 후 바로 짐을 싸 길을 나섰다. 이렇게 료칸 맛보기로 참 좋았던 1박이 금방 지나갔다. 가격대도 교토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아주 좋은 편이었고 식사도 괜찮았다. 참 조용한 시골마을인 오하라, 그냥 정류장 길가도 이렇게 예쁘다. 가을에 단풍 들고 오면 얼마나 더 멋질까.
![]() |
고즈넉한 거리의 모습. |
"근데 벌꿀아 왜 그렇게 료칸에 가보고 싶어한 거야? 이제 소원 풀었겠네?"
신랑이 묻길래 대답했다.
"응. 처음 료칸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병헌과 김태희 사탕키스로 유명한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면서였어. 두 사람의 여행지였던 일본 아키타현의 료칸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에서 온천목욕, 사케 한 잔 이런 것들이 작은 로망이었거든."
"헐, 그거 2009년인가 했던 거 아냐?"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좀 슬프네..."
![]() |
드라마 `아이리스` 의 김태희와 이병헌의 모습. 방송된지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
◆옆집부부의 간략 체험후기
이름: 유모토 온센 오하라산소우 료칸 (Yumoto Onsen Oharasansou)
장점: 조용하고 분위기 좋고 가성비가 좋음
단점: 교토역에서 버스 타고 1시간 넘게 걸림
주소: 17 Oharakusao-cho, Sakyo-ku, Ohara, Kyoto
[MayToAugust부부 공동집필]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