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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아이스버킷 챌린지 끝났지만...계속되는 루게릭 환자들의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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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4년 여름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한 빌 게이츠(왼쪽부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부시 미국 전 대통령,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동영상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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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올해로 3년을 맞았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미국 ALS(근위축성측색경화증)재단이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대중에게 알리고 환자 치료에 필요한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한 캠페인이다. 먼저 얼음물을 뒤집어 쓴 사람이 3명의 동참자를 지목하면 지목된 사람은 24시간 이내에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루게릭병 환자를 지원할 100달러를 미국 ALS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캠페인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유명인들이 참여 영상과 사진을 올리고, 당시 오바마 미 대통령은 기부금을 내는 방식으로 동참하며 전 세계적인 열풍이 됐다. 한국에서도 연예인, 정치인, 운동선수는 물론 일반인까지 얼음물 뒤집어쓰기 대열에 참가했다.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은 아이스버킷 챌린지 이후에도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며 그들만의 ‘챌린지’를 이어가는 마라토너 안드레아 피트(36ㆍ미국)를 소개했다. ☞관련기사

피트 역시 2014년 여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캠페인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그 때, 피트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팔이 잘 올라가지 않아 박수를 칠 수 없었고 목소리가 미세하게 변했으며 근육의 긴장이 지속됐다. 몇 주간 수십 개의 병원을 전전하던 피트는 그 해 가을 루게릭병 확정 판정을 받았다. 이전까지 ‘재미있는 이벤트’에 불과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루게릭병 환자가 된 이후 ‘자신을 위한 모금행사’가 된 것이다.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2년에서 5년 이내에 사망한다. 아직 확실한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아이스버킷 챌린지 등을 통해 2억 2,000만 달러(약 2,467억)라는 막대한 금액이 모였지만 절반 이상이 연구비로 쓰여, 미국 내 루게릭 환자를 위한 공공 서비스 등의 복지는 미미하다. 이 같은 관심마저도 열풍이 지나면 곧 사그라질 것이라는 것을 피트는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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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킷 챌린지 모금액 활용 내역. 연구비 외 환자들의 복지에 쓰이는 금액은 미미하다. 미국 ASL재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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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는 루게릭 확정 진단을 받은 후 트라이애슬론 선수였던 존 블라이스의 영상을 찾아봤다. 그는 루게릭병 환자로서 최초로 하와이 트라이애슬론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전설’이다. 블라이스에게 영감을 받은 피트는 2014년 가을, 램블린 로즈 스프린트 트라이애슬론 경기 출전 계획을 세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잇는 피트만의 ‘챌린지’가 시작된 순간이다.

그는 출전을 위해 휠체어 형태의 세 발 자전거를 만들었고 수영을 연습했다. 그리고 완주를 도울 파트너로 가장 친한 친구인 줄리 웬저를 섭외했다. 그들은 3시간 23분의 기록으로 565명의 참가자 중 각각 564위, 565위로 경기를 마쳤다. 수백 명의 관중들이 그들을 응원했고 전국의 루게릭병 환자들에게서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후 피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팀 드레아’ 재단을 만들었다. 최초 5,000달러(560만원)를 목표로 시작한 모금 금액은 조기에 달성했다. 이후 2015년에 세 번, 2016년에 12번의 경기를 치렀다. 올해만 16만5,000달러(약1억8,500만원)가 넘는 금액이 팀 드레아 재단을 통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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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램블린 로즈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출전한 안드레아 피트(왼쪽)와 줄리 웬저. ESPN 캡처


피트의 상태는 3년 전보다 현저히 악화됐다. 운동 세포가 죽어가 근육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피트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영상을 활발히 올리지만, 이제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긴 힘든 상태다. 그럼에도 피트는 2017년에만 현재까지 3번의 하프 마라톤, 2번의 10K와 1번의 5K 마라톤을 완주했다. 올 가을에는 2개의 풀코스 마라톤과 3개의 하프마라톤에 출전할 예정이다.

“피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을 때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고민했다. 그리고 피트가 세상을 등지지 않았던 것처럼 피트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혀가 굳어가는 피트 대신 그녀의 남편이 말을 대신 했다. 유명인들의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유행처럼 흘러갔지만, 피트의 ‘챌린지’는 그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순간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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