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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오!쎈 인터뷰]① 최형우, "방출 후 막노동하면서 독기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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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대구, 손찬익 기자] 최형우(KIA)의 야구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방출과 재입단의 우여곡절을 겪은 최형우는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 교체에 앞장섰고 5년 연속 정규시즌 1위 등극에 이바지했다. 올 시즌 타격(.376), 최다 안타(195개), 타점(144개) 등 3개 부문 1위에 오른 최형우는 24일 KIA와 4년간 총액 100억원(계약금 40억원 연봉 1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숱한 역경을 딛고 KBO 사상 최초로 총액 100억 시대를 연 선수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최형우의 성공 스토리는 퓨처스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다음은 최형우와의 일문일답.

-지난해 일본 오키나와 2차 캠프 때 '4년 120억 몸값의 가치를 지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실감이 나는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FA 계약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고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축하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아직 실감이 안난다. KIA 유니폼을 입게 되면 실감이 날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KBS2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라는 송중기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내 성격이 그렇다.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잘 아시겠지만 나는 밑바닥까지 가본 경험이 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 그래서 항상 목표를 크게 잡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어차피 실패하더라도 손해볼 건 없으니까. 방출 이후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상황이든 긍정의 힘으로 위기를 이겨내고자 한다.

-FA 계약 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심각하게 난리났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까지 축하 연락을 했다. 전화 뿐만 아니라 축하 메시지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아직 답장을 다 하지 못했다. 이런 걸 보면 나 스스로 뿌듯해진다. 나를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다.

-과거 '내가 FA 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 FA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어쩌면 FA를 생각하지 않았던 게 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재입단 후 내 자리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는데 FA 자격을 얻는다는 걸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렵게 기회를 잡은 만큼 딴 생각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뛰었다.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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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10여 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방출 통보를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쪼단(부상이나 혹사 혹은 노쇠화로 어깨가 망가져 공을 잘 던지지 못한다는 의미의 야구계 속어) 때문이다. 방망이 하나 만큼은 정말 자신있다 보니 방출 통보를 받으리라 상상도 못했다. 돌이켜 보면 송구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연습할땐 잘 던지는데 경기할때마다 제대로 던지지 못하니 그런 게 아닐까.

-계속 포수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쪼단 증세가 남아 있다. 전훈 캠프 때 포수 수비 훈련을 할때 2루 송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나이도 어리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안되는 걸 보니 아직 쪼단 증세가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포수에 대한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나름대로 잘했다. 고등학교 때 이성열(한화) 등 후배 선수들이 나의 수비 동작을 보고 배우기도 했다.

-경찰 야구단에서 야구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는데.

▲속된 말로 세상과 단절하겠다는 마음으로 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인 뒤 화가 정말 많이 났다. 방출 직후 입대까지 두 달 정도 시간이 있어 고향에 갔는데 돈도 없고 할 게 없었다. 한 달간 막노동을 했었다. 독기를 품은 상태에서 막노동까지 하니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배가 됐다. 힘들 때마다 막노동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경찰 야구단 합격 통보를 받은 뒤 다시 희망의 끈을 잡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간 정말 죽도록 했다. 지금껏 야구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훈련했던 건 처음이다. 두 번 다시 못할 만큼 했다.

-경찰 야구단 전역을 앞두고 복수의 구단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는가.

▲당시 8개 구단 체제였는데 삼성을 비롯한 7개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방출 전 연봉이 2100만원이었는데 훨씬 더 많이 준다고 했었다.

-삼성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정(情). 이 한 마디면 설명이 될 것 같다. 정이라는 게 참 무섭다. 나를 버린 삼성이 아닌 다른 구단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정 때문에 삼성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코치님과 선후배 그리고 친구들을 두고 다른 곳을 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특히 (조)동찬이, (안)지만이, (손)주인이 등 친구들이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던 게 컸다. 재입단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에 (조)동찬이와 통화할 정도였다.

-2008년 삼성 타선의 세대 교체를 이끈 주역이다. 박석민과 채태인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느낌이 든다.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가.

▲나는 성격 자체가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무래도 활달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후회 또는 아쉬움은 없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거북이처럼 한 걸음씩 나아가기 위해 죽기 살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나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돌이켜 보면 (채)태인이형, (박)석민이와 함께 하면서 좋은 추억을 쌓았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wha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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