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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인기’를 넘어 ‘신드롬’ 수준이다.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개설한 지 사흘 만에 60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그가 글을 올릴 때마다 수백명이 ‘찬사’를 보낸다. 분명 프로필엔 스님이라고 돼 있는데, 그의 글은 속세의 것들로 넘쳐난다. 술과 고기 이야기에도 자유롭고, 여자 이야기(아니, ‘예쁜 여자’ 이야기)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뿐 아니라 스스로 술, 도박, 고기, 마약도 좋아한다고 적고 있다.
연애나 직업 문제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 직설적이다 못해 때로는 패배주의적인 단어까지 써 가며 듣는 이에게 훈계 섞인 조언을 한다.
예를 들어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의 과거, 충북 음성의 산중에서 태어난 소년은 오늘날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됐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비결은 주어진 것에 절망하지 않고 무언가를 갈구하며 노력하고 나아갔다는 점이다.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에 감복한 하늘은 그에게 운을 내려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게으르고 운도 없다. 그러니 그냥 포기하자. 뭐하러 힘들게 뛰고 공부하는가. 그래 봐야 안된다.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져서 오래 살 수 있지만, 인생을 통시적으로 볼 때 그 늘어난 수명보다 운동에 소모한 시간이 더 많다. 그러니 포기해라. 근육 길러서 망고민소매 입고 NB2 앞에서 줄 서 있으면 철철 흘르는 간지 때문에 여성들이 접근할 것 같은가? 옆에 서 있는 비료푸대 입은 원빈을 쫓아간다. 그러니 포기하라” 등의 ‘조언’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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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스님 페이스북 |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잠이나 더 자고, 괜히 허황된 망상 품으며 이런저런 일 벌리지 말고 아예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헛된 기대 하지 말고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한다. ‘현실적’이라는 단어로만 규정하기엔 허무와 현실 도피로 똘똘 뭉쳐 있는데도 사람들은 열광한다.
혜민 스님이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주고 있다면, 효봉 스님은 세상 알 것 다 아는 ‘큰 형님’같은 마음으로 마음 못 잡고 헤매는 중생들을 ‘지도’한다. 나이트클럽에 기웃거릴 시간에 잠이나 자고, 성형 수술 논란 일으키는 것 보다 수술해도 못난 자신을 탓하고, 어차피 경쟁되지 않을 것 같으면 다른 장점을 살려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요즘 같이 세상이 살기 어려울 땐, 차라리 이런 현실적인 가르침이 더 촌철살인으로 느껴진다” “겉치레를 벗고 ‘계급장 떼고 이야기해’라는 식의 시선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진짜 스님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 안 하겠지만, 뭔가 속풀이 하는 것 같아 좋다”고 말한다. 또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스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늘어난 요즘, 차라리 이렇게 가식이나 거짓 없이 자신을 다 내보이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다.
‘저렴한’ 글귀로 ‘이 미련한 중생들아’라고 수시로 외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속 시원하다”고 말한다. 그의 직언이 사회 부조리를 지적하는데 둘도 없는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선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알고 보면 ‘그 안에 속세의 때를 벗어내려는 몸부림의 산물’이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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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물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며칠 만에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일부에선 그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생겨났다. ‘스님’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있기에 불법도 설파하고, 부처님에 귀의한 이유도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는 있지만, 그러면서도 ‘키스 느낌 나는 법’이라며 혀를 입 안쪽에서 돌리는 방법을 그림까지 그려주며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쯤 되면 ‘스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앞서 그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페이스북 유저들은 그에게 직접 묻기도 하고, 각자 나름대로 추측하기도 한다. ‘효봉 스님’이 아니라 ‘효봉스 님’이라는 해석도 했다. 즉 ‘효봉스’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님’자를 붙였다는 것이다. 그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잘 보면 혜민 스님의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일부 혜민 스님 팬들은 그의 계정이 ‘패러디’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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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느낌 나는 법이라는 게시물. 이 글 뒤 '진짜 스님이 맞느냐'며 갑론을박이 심해졌다. |
네티즌들의 ‘추척’에 따라 최근 밝혀진 효봉스님의 정체는 일부가 예상했던 스님은 아니다. 일반인으로, 이 페이스북은 ‘쇼프’라는 패션문화 웹진 측에서 만든 사이트로 알려졌다. 효봉이라는 사람과 한 기자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글발’ 좋은 기자의 ‘촌철살인’ 멘트 덕에 효봉의 ‘설파’가 가능했고, 속세의 고민을 잔뜩 지는 듯한 주인공의 비주얼이 어우러져 하나의 신드롬을 완성해 간 것이다.
네티즌들은 “그의 이야기엔 요즘 같이 힘든 세대를 보듬고 아우르는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따지고 들면 이 팍팍한 인생 뭐가 남겠는가. 이렇게 즐기며 보는 페이지도 필요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까발렸으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과 “한두 번은 괜찮지만 스님의 위신에 누를 끼치는 거 아닌가 우려된다”“퇴폐적이거나 오해를 살 만한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 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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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스님의 프로필은 혜민 스님의 프로필 사진을 포토샵 작업을 통해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혜민스님 프로필 |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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