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마약왕 에스코바르의 ‘살인 기계’가 유투브 방송을…참회인가, 희생자에 대한 모욕인가

경향신문
원문보기

마약왕 에스코바르의 ‘살인 기계’가 유투브 방송을…참회인가, 희생자에 대한 모욕인가

서울맑음 / -3.9 °
1980년대 콜롬비아에서 악명을 떨쳤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가 이끌었던 마약조직 ‘메데인 카르텔’은 콜롬비아 정부와 전쟁을 치르며 수천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했고 아직까지 그 유가족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에스코바르의 ‘살인 기계’로 일했던 자가 ‘참회’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범행을 공개적으로 설파하고 다닌다면,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스코바르의 행동대장인 존 자이로 벨라스케스가 ‘유투브 스타’가 됐다”고 보도했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암살자로 일했던 존 자이로 벨라스케스.|유투브 영상 갈무리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암살자로 일했던 존 자이로 벨라스케스.|유투브 영상 갈무리


올해 54세인 벨라스케스는 에스코바르가 경찰이나 판사, 언론인 등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고용한 ‘시카리오(암살자)’ 중 하나였다. 18세 때부터 메데인 카르텔에서 일했고, 넓은 턱 때문에 유명 만화 캐릭터 이름을 따 ‘뽀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89년 유력 대선후보였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3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4년 8월 가석방됐다. 그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300명 이상을 직접 죽였고, 간접적으로 가담한 것까지 치면 3000명 가까이 죽였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벨라스케스는 출소 뒤 동영상 사이트 유투브에 <참회하는 뽀빠이>라는 제목의 채널을 열었다. 지금까지 100여개의 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메데인 카르텔의 역사와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폭력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구독자는 꾸준히 늘어 이제는 10만명 넘게 구독하는 인기 채널이 됐다.

왜 이런 채널을 만든 걸까. 벨라스케스는 “아직도 콜롬비아에는 범죄에 호기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털어놓고, 젊은 세대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참회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콜롬비아에선 에스코바르를 ‘영웅’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일부 남아 있다. 한때 에스코바르는 너무 많은 현금을 보관할 곳이 없어 빈민에게 나눠 주거나 주택과 병원, 학교를 짓는 데 썼다. 이렇게 얻은 인기로 그는 국회의원에도 당선될 수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의 사망일마다 무덤을 찾는 추모객들이 적지 않다. 벨라스케스는 한 영상에서 “에스코바르는 나쁜 짓을 했다. 새로운 세대는 에스코바르나 나의 범행에 관심을 갖지 말도록. 우리는 범죄자일 뿐이다”라고 했다.

메데인 카르텔에서 일할 당시의 벨라스케스

메데인 카르텔에서 일할 당시의 벨라스케스


간혹 메데인 카르텔에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 가족이 벨라스케스의 채널에 댓글을 달기도 한다. 한 번은 살해당한 경찰관의 동생이 ‘우리 가족을 만나볼 생각은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벨라스케스는 가디언에 “고통스러운 질문이었다”며 “직접 그들과 만나 용서를 구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참회 명목으로 범죄 활동을 떠벌리며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를 헤집어 놓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벨라스케스는 ‘잘못을 참회하고 젊은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방송을 시작했다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유명세를 얻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한 영상에서 베네수엘라 집권당을 비난하며 자신을 “민주주의의 투사”라고 표현했고,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즈만에 대해 다룬 영상에서는 “구즈만의 가장 큰 약점은 억제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면서 ‘아는 체’를 하기도 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모습. 그가 이끌던 메데인 카르텔은 1980년대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의 80%를 공급하던, 중남미 최대 마약조직이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모습. 그가 이끌던 메데인 카르텔은 1980년대 미국으로 들어가는 마약의 80%를 공급하던, 중남미 최대 마약조직이었다.

희생자 가족 중 하나인 곤잘로 로하스는 가디언에 “벨라스케스는 진정으로 참회하고 있지 않다”면서, 수백명을 죽인 범죄자가 오히려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로하스의 아버지는 1989년 콜롬비아 최악의 항공기 사고인 ‘아비앙카항공 203편 폭탄테러’ 때 목숨을 잃었다. 메데인 카르텔은 당시 ‘마약과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건 대선후보 세자르 가비리아를 죽이려고 그가 타려던 여객기에 폭탄 테러를 벌였다. 승객과 승무원 107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가비리아는 그 비행기에 타고 있지 않았고, 이듬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에스코바르는 가비리아의 임기 중이던 1993년 12월 특수부대와 교전 도중 사살됐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