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형제 모두 6·25 참전용사… 막내 생존, 두 형 현충원에
둘째 고 김제평씨 며느리는 현충원 직원으로 근무 중
25일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제3묘역. 6·25 발발 62주년을 맞아 현충원에 안장된 두 형제의 묘역 주변에 이들의 동생과 아들, 며느리 등 여섯 유족이 모여 참배했다.
특히 유족 중 고 김제평씨의 며느리 박선숙(40·가명)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탈북자인 박씨는 대전현충원 관리과 계약직 직원에 채용돼 지난 5월 22일부터 민원상담 및 처리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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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 유가족들이 25일 국립대전현충원 사병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이곳에 안장된 고인의 며느리는 탈북 여성으로 지난 5월 대전현충원 직원이 됐다. /신현종 기자 |
박씨는 "현충원 채용면접 전 아버님 영전에 인사드리며 '꼭 도와주세요'라고 빌었는데 합격했어요"라며 시아버지에 올리는 편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다.
"임신했을 때 냉면을 좋아한다고 제일 맛나는 냉면집에 데리고 가 사주시던 아버님, 보일러도 잘 안켜시다 며느리가 온다면 방을 따뜻하게 해주시던 아버님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박씨는 "큰 시아버님도 제가 잘 보살펴드리고 있으니 아무 걱정마시고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히 계시길 바란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경북도 함흥이 고향인 박씨는 대학 졸업 후 제철소에서 설계업무를 하다 1997년 식량난 때문에 중국으로 탈출했다. 길림성 등에서 8년 간 농사일 등을 하며 지내다 2005년 6월 몽골을 통해 어렵게 한국에 왔다. 작년 9월 북에 있던 어머니(72)와 둘째 남동생(35)도 탈북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
2005년 10월 대전에 정착한 박씨는 식당, 상조회사 등에서 일하다 직장 상사의 소개로 남편 김대경(47)씨를 만나 6개월 연애 끝에 결혼했다. 시아버지 고향이 의주라는 것을 알고 서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현재 다섯 살과 세 살 두 딸을 키우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린 박씨는 몇달 전 대전현충원 직원 채용 소식을 접하게 됐고, 남편의 권유로 시아버지가 안장된 대전현충원에 지원했다. 18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박씨는 "모두 하늘에 계신 시아버님이 도와준 덕분"이라고 했다.
박씨의 시아버지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고(故) 김제평(1927년생)씨. 특히 제평씨 3형제는 모두 6·25 참전용사로 형인 고 윤평(1925년생)씨와 함께 대전현충원에 나란히 묻혔다. 막내 문평(83·대전시 유성구)씨도 이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노구를 이끌고 와 먼저 간 형들의 명복을 빌었다.
평안북도 의주군이 고향인 이들 3형제는 부모를 따라 해방 직후 남한에 정착했다. 이어 6·25가 터지자 나란히 참전해 전공을 세웠다. 맏형 윤평 육군 중사는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둘째 제평 육군 중사는 1951년 충무무공훈장을, 셋째 문평 육군 하사는 1953년 화랑무공훈장을 각각 받았다. 막내 문평씨만 현재 생존해 있고, 큰 형과 작은 형은 각각 1998년과 2009년 지병으로 숨졌다.
유족들은 이날 묘비 앞에 조화를 바친 뒤 각자 편지를 써와 묘비 앞에서 낭독했다. 윤평씨의 장남 대영(58)씨는 "어머니와 가족들 모두 잘 지내고 있으니 부디 하늘나라에서 많이 보살펴주세요"라고 쓴 엽서를 묘비 앞에 바쳤다. 박씨의 남편인 대경씨는 "평소 아버님 말씀대로 가족의 화목과 나라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어요. 날씨 더운데 잘 지내세요"라며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참배를 마친 유족들은 정성껏 쓴 편지와 엽서를 현충원 내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어 하늘로 소식을 전했다.
문평씨는 "먼저 간 형님들 곁을 며느리가 든든하게 지키고 있어 대견하다"며 "두 형님 옆에 묻히고 싶은데 주변이 꽉 차 아쉽다"고 말했다.
박씨는 묘지 참배 후 "현충원의 모든 호국영령을 친부모처럼 정성껏 모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우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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