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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타결> 막후에 '아베 외교책사' 야치 있었다

연합뉴스 조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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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타결> 막후에 '아베 외교책사' 야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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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치 쇼타로(연합뉴스.자료사진)

야치 쇼타로(연합뉴스.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역사적인 군위안부 합의의 막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외교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71·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이 있었다.

그는 협상이 중대 고비에서 진전을 못하고 있을 때 '구원투수'로 나섰다.

12월 15일 도쿄에서 열린 제11차 한일 국장급 협의 직후 한국 측 대표인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 국장은 기자들에게 "지금 단계에서 성과가 있었다거나 없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한 뒤 조기에 후속 협의 일정을 잡겠지만 연내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다음날 한일 양국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요구해온 연내 타결은 무산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때 야치가 움직였다. 그는 지난 22∼23일 서울을 방문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시기적으로 아베 총리가 주시한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 1심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지 닷새 후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 검찰이 산케이 건에 대한 항소 포기를 발표(22일)했고, 그 이튿날 23일 한일 청구권 협정의 위헌 여부 판단을 회피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일본 정부가 고도의 관심을 기울인 두 사안이 매듭지어진 시점에 야치가 한국에 있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다음날인 24일 아베 총리가 "내가 책임을 지겠다"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을 한국에 급파했다는 점에서 야치가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과 군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중요한 막후 협상을 벌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소녀상 이전, 최종 타결 보장 등 실무자들 간에 풀 수 없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에서 아베 총리의 신뢰를 받는 그가 돌파구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협상 파트너는 주일 한국대사를 지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인 것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이병기-야치 라인은 지난 6월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양국 정상이 교차 참석하기까지 물밑 조율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이 2013∼2014년 사이에 주일대사를 맡았을 당시부터 야치와 두터운 신뢰관계가 구축됐다는 후문이다.


직업 외교관 출신으로 외무성 사무차관까지 지낸 야치는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위안부 문제 말고도 2006년 일본이 독도 주변에서 해양과학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나섬으로써 한일 갈등이 고조됐을 때 방한, 사태를 봉합하는 협상을 한 것도 그였다.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평가되는 그는 우익 성향의 정치인들이 아베 주변에 다수 포진해있는 상황에서 외교 문제에 관한한 아베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왔다. 작년 아베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간의 첫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앞서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 양제츠(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과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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