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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재범 기자]영화 ‘인간중독’이 언론에 공개된 뒤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를 보게 됐다. 감독이 즐겨 쓰는 ‘파격 19금’ 그리고 ‘송승헌’이란 다소 폐쇄적이던 배우의 일탈적 변신, 여기에 신인 여배우의 발견이란 몇 가지 코드가 공개 전 화제가 됐고, 그 기대치가 일정 선에 도달했는지 아니면 미치지 못했는지를 두고 왈가불가를 하는 얘기들 말이다.
사실 ‘인간중독’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는 ‘노출’에 맞춰져 있었다. 김대우란 감독이 누군가. ‘정사’ ‘스캔들’ ‘방자전’ ‘음란서생’ 등 충무로 19금계열의 마이스터를 자처하는 독보적 존재 아닌가. 언론 공개 전 포커스도 그랬다. 노출의 강도, 그리고 데뷔 후 지금껏 베드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송승헌이 시원스럽게 벗었다고 하니. 그 작품이 김대우의 영화란다. 이건 안 봐도 비디오다. 살아있는 다비드 상에 비유되는 송승헌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신예 임지연의 파격 나신이 스크린에서 펄떡인다니. 더욱이 일반인들은 알 수도 없는 군 관사란 생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불륜이다.
다른 부분은 다 제쳐두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중독’은 김대우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타이틀에서 ‘19금’ ‘파격’이란 단어를 지우려하는 첫 걸음이다. 노출에만 집중된 김대우 감독이지만, 그의 진짜 장기는 ‘멜로’다. 이미 충무로에 수많은 ‘멜로’ 장인들이 있지만 김대우는 좀 다른 영역이다. 절대 이뤄져선 안 되는 사이에서 벌어진 사랑, 그리고 비극적 결말. 결국 김대우는 전작에서도 그랬고 이번 ‘인간중독’에서도 그랬다. ‘금기’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남녀가 겪을 통념의 처벌 말이다. 여기서 ‘금기’와 ‘통념’은 ‘욕망’이란 하나의 단어로 귀결될 수 있다. 그가 쓴 전작 시나리오, 혹은 연출을 맡은 작품 모두를 생각해 보라.
‘인간중독’은 조금 더 나아갔다. 배경 자체가 군대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조직 체계 가운데 자유가 구속된 유일한 집단이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속에서 ‘금기’는 곧 집단의 붕괴다. 김진평(송승헌)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집단이 요구하는 금기조차도 초개처럼 던져버릴 수 있는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금기의 박살’은 아주 작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견고한 성채의 붕괴는 한 순간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 하나의 무너짐에서 시작한다는 일종의 암시라고 할까. 바꿔 말하면 군대란 규율의 조직이 만들어 낸 ‘전쟁 영웅’도 감정의 미묘한 흔들림으로 삶의 결과가 뒤바뀔 것이란 점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경우진(온주완) 대위가 전출 신고를 하면서 무심결에 던진 한 마디 “대령님과 저희 아내의 생일이 똑같다”는 스쳐지나가도 될 말 한마디가 진평과 종가흔(임지연)의 시작이었다. 이게 바로 철옹성 같던 성채(진평의 삶)의 벽을 허물어 버리게 된 발단인 셈이다.
맞춰진 삶, ‘금기’ 속에서 재단된 자신의 인생 속에서 진평은 어떤 구멍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경우진의 말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급기야 무언가에 이끌리듯 경우진의 관사 앞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종가흔과의 첫 만남이 이뤄진다.
돌멩이 하나가 빠진 구멍 주변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바스러지게 된다. 군 병원에서 겪은 우연한 사건, 죽을 위기에 처한 가운데서도 목숨을 건진 종가흔이 건낸 단 한 마디 “귀걸이가 없어졌다”는 말은 진평을 그동안 굳게 가둬 놓았던 ‘금기’를 무너트리고 ‘호기심’이란 열쇠로 뒤바뀌게 된다.
이후 진평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금기의 성’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호기심’의 열쇠로 문을 열고 나온다. 문을 열고 나온 성 밖 세상은 진평에겐 낯설음과 설레임의 반복이다. 평소 관심도 없던 음악을 듣게 되고, 어울리지 않는 왈츠를 배우게 되며 자신의 아내에게조차 느끼지 못했던 질투를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결국 진평의 삶과 종가흔의 삶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김대우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혹은 그것을 모르더라도 ‘인간중독’은 이뤄질 수 없는 ‘금기의 사랑’을 말한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비극이다. 이미 김대우의 이런 사랑 방정식은 여러 번 반복돼 왔다. ‘음란서생’의 윤서와 정빈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시대적 규율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스캔들’의 조원과 조씨 부인, 그리고 숙부인 모두는 그 사랑을 안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떠나게 된다. ‘방자전’의 방자는 그 사랑에 목숨을 건다. ‘인간중독’ 속 진평과 종가흔, 그리고 그 주변은 어떻게 될까.
조금 다른 점을 들 수 있다면 앞선 3편의 영화는 사극이란 장르의 특성과 함께 김대우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파격적인 시도의 결말을 이끌어 냈단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중독’은 어떨까. 가장 순수한 인물 ‘종가흔’을 중심으로 욕망이 전부인 ‘인간중독’ 속 인물들의 끝은 어디일까.
가장 앞에서 설명한 단어 ‘금기’로 돌아가 보겠다. 김대우 감독은 ‘인간중독’은 ‘금기’를 향해 ‘사랑’의 창을 들고 돌진한 한 병사의 전쟁 같은 얘기라고 마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진평과 종가흔의 어떤 결말로 인해 서로에 대한 금기의 사랑이 프러포즈로 변하게 되는지를 관객들은 눈으로 목도하게 된다. 당연히 쉽지 않은 장면이다. 가슴이 아리고 구멍이 뚫린 듯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결국 그 결말을 통해 김대우가 ‘인간중독’을 통해 이제야 ‘19금의 파격’을 깨버리고 싶던 욕망을 표출한 듯하다. 혹시 영화 속 김진평이 김대우 감독의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인간중독’, 노출이 아닌 멜로의 감정으로 다가서길 바란다. 진평과 가흔의 가슴이 분명 느껴질 것이다. 아마 감독도 배우들도 분명히 그걸 바라면서 이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의 영화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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