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외로웠나 봅니다.”
―김보솔 ‘광장’
체제의 감시가 만들어내는 불안은 외로움이라는 감정마저 잠식하는 것일까. 북한을 배경으로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 1등 서기관인 보리와 교통보안원 서복주의 사랑을 다룬 김보솔 감독의 ‘광장’은 바로 그 외로움을 화두처럼 던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보리와 복주는 한낮에 거리를 걷거나 손을 잡을 수도 없는 처지다. 늘 감시의 시선이 따라붙어서다. 이방인과의 밀접한 접촉은 스파이 짓이 되어 처벌받을 수 있는 나라. 그래서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평양을 배경으로 하는 이들의 사랑은 더 절절해 보인다.
북한 통역관이자 그들을 감시하는 일을 하는 리명준은 그런 보리의 행동들이 탐탁지 않다.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리명준이 보기에 그건 복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그건 사랑이 아닌 이기적인 짓일 뿐이다. 자신의 집에서 삶은 계란에 맥주 한잔하자는 보리의 소박한 호의조차 리명준은 뿌리친다. 감시 대상과 가까워지는 일은 자신 또한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양에 더 머물고 싶다는 간청이 거절되고 갑자기 복주마저 사라지자 절망하는 보리를 보며 리명준은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평양 추방’이라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보리가 복주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걸 도와준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스웨덴대사의 물음에 리명준은 말한다. “글쎄요…. 외로웠나 봅니다.” 체제의 감시 아래 외로움 같은 감정보다 살아남기 위한 불안 속에 살아가던 리명준의 꽁꽁 얼어붙은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그 외로움은 그래서 작은 희망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은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인간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부터 춥디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을 희망할 수 있을지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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