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진료실에는 예약 리스트가 놓여 있다. 이름 하나 발견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올 때마다 기분을 흔들어놓고 가는 분 이름이 있었다. 평소 십 년 가까이 합을 맞춰온 분들이 지내온 시간을 점검하고 나가는 정신과 진료실 풍경은 평온하다. 이분은 다르다. 올 때마다 본인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를 흔들다가 나간다. 신기하게 냉소적으로 공격적이고, 대화에 합이 맞지 않는다. 이분이 한바탕하고 나가면 진이 빠지고 기분을 잡친다. 한번 휘저어져 흐트러진 기분은 내가 왜 여기 앉아서 이러고 있나 하는 불쾌와 자괴감으로 이어지는데 쉽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 피해는 그다음 환자에게 고스란히 넘어간다.
나름 전문가인 나도 이렇듯 일과 삶에 감정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하나, 완전한 배제는 불가능하다. 감정은 진화적으로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감정을 다루는 뇌의 기관인 편도는 포유류부터 존재한다. 충분히 상황을 조망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일단 도망갈지 싸울지, 옆으로 비켜나갈지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신중하게 생각하다 위험해지지 말고 일단 움직이고 보는 게 틀리더라도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 감정은 전체 방향을 결정해주는 깃발과 같다. 대신 신호를 주고 나면 바로 꺼져야 하는 것이 감정의 기능이다. 갑자기 휙 지나간 오토바이에 놀라 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반응이다.
감정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눈다면 좋은 감정은 가급적 오래가고, 슬프거나 무섭게 느낀 감정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행복, 기쁨, 포만감 같은 감정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반면 무서움, 슬픔, 두려움, 배고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도망가고, 먹을 것을 찾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수적이다. 내 눈에는 위험한 상황이 끝난 것 같아도 한동안은 그 감정의 톤을 유지해주는 것이 생존에는 도움이 된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고, 숨어 있던 적이 돌아와 재공격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부정적 감정은 아쉽지만 상대적으로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름 전문가인 나도 이렇듯 일과 삶에 감정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하나, 완전한 배제는 불가능하다. 감정은 진화적으로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감정을 다루는 뇌의 기관인 편도는 포유류부터 존재한다. 충분히 상황을 조망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판단하고 행동하기에 앞서 일단 도망갈지 싸울지, 옆으로 비켜나갈지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신중하게 생각하다 위험해지지 말고 일단 움직이고 보는 게 틀리더라도 생존 확률을 높여준다. 감정은 전체 방향을 결정해주는 깃발과 같다. 대신 신호를 주고 나면 바로 꺼져야 하는 것이 감정의 기능이다. 갑자기 휙 지나간 오토바이에 놀라 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정상반응이다.
감정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눈다면 좋은 감정은 가급적 오래가고, 슬프거나 무섭게 느낀 감정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행복, 기쁨, 포만감 같은 감정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별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반면 무서움, 슬픔, 두려움, 배고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도망가고, 먹을 것을 찾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필수적이다. 내 눈에는 위험한 상황이 끝난 것 같아도 한동안은 그 감정의 톤을 유지해주는 것이 생존에는 도움이 된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고, 숨어 있던 적이 돌아와 재공격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부정적 감정은 아쉽지만 상대적으로 오래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기를 바라고, 부정적 감정은 빨리 사라지기 바라지만 생존 관점에 맞춰 기본 세팅이 되어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기분은 판단, 행동에 필터로 작동하고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감정에 치우치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흔들거리고 나와 다른 나를 만나고 금방 지친다. 또, “활기차고 신나게 일합시다”라는 말도 생리에 역행하는 지시다. 억지로 긍정적 기분을 덧씌우기도 어렵고, 오래가지도 않고, 더 나아가 그나마 가진 에너지를 빨리 소진해버릴 위험이 있다. 놀이동산을 가서 신이 난 아이가 1시간 만에 뻗어버리듯이 말이다.
그러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피겨퀸 김연아 선수의 스무 살 때 인터뷰가 단초를 준다. 경기 전 스트레칭을 하는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냐고 묻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다. 나중에 <유퀴즈>에 출연해서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기분이었는데, 즉흥적으로 답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재빠른 감정의 리셋과 거리두기 능력이 김연아를 김연아로 만든 핵심이 아니었을까.
하루를 보내며 기분이 좋을 필요도, 또 나쁜 상태로 있을 필요도 없다. 특히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더욱더. 우리의 하루는 그냥 보통의 하루면 충분하다. 기분 내키는 대로가 아니라 계획에 따라, 익숙하게 하던 대로 무심하게 그냥 하면 된다. 그러면 감정에 휘둘려 제풀에 지쳐 짜증이 위험수위까지 올라오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활기찬 하루보다 별다른 감정 없이 보내는 그냥 하루가 쌓이기를 기대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