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위한 통합 안 된다…목표 분산 우려도
미디어 통합 법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를 지휘해야 할 정부 부처의 역할과 정책 리더십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동안 미디어 정책이 통상 마찰이나 정치적 공방에 휘둘리며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소관부처 스스로가 정책의 방향성조차 정립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인공지능(AI)과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는 미디어 생태계에 대해 정부가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시청각미디어서비스’로 이용자 중심 재정의
26일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주도하는 통합미디어법 태스크포스(TF) 안건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현행 방송법은 2000년 제정 이후 큰 틀을 유지해 오면서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 환경을 포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IP 기반 서비스임에도 OTT, 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FAST) 등 다양한 미디어 유형이 등장했지만 현행법은 여전히 케이블·위성·IPTV 등 전송 기술 방식에 따른 구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이에 이번 통합 법제안은 방송을 ‘시청각미디어서비스’로 새롭게 정의하고 이용자 중심의 분류 체계를 도입했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를 시청각미디어 콘텐츠를 편성·배치하거나 채널을 구성해 공중에게 제공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로 폭넓게 정의한 점이 핵심이다.
◆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OTT·유튜브 법 체계 편입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현행법에서 OTT 등에 대해 명확한 법적 지위가 규정되지 않았던 부분도 정비했다. 그동안 일부 신규 사업자는 법적 정의가 없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기존 방송사업자들과의 규제 형평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OTT와 유튜브 등 VSP(비디오 공유 플랫폼)를 ‘설비 미보유 시청각미디어 플랫폼 서비스’로 분류해 법 체계에 편입시키고,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와 불법·유해 콘텐츠 유통 방지 등 새로운 책무를 부과했다.
유튜브 채널 역시 규율 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 ‘이용자 제작 시청각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로 분류되는 유튜브 채널 가운데 일정 수익이나 구독자 기준을 초과할 경우 방미통위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금전적 후원을 받는 경우 콘텐츠 내에 이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하는 ‘광고·협찬 고지 의무’를 부과하고, 전문의약품 등 특정 상품에 대한 광고나 판매 유도 행위는 금지하도록 했다.
레거시 미디어에 대해서는 ‘공공영역’과 ‘시장영역’으로 구분해 시장영역에 대한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각 영역의 특성에 맞는 책무와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공공과 시장을 절대적으로 분리하지는 않고 공공영역 미디어의 상업 활동과 시장영역 미디어의 공적 역할 수행도 허용키로 했다.
특히 시장영역 내 플랫폼 서비스 가운데 IPTV와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설비를 보유한 플랫폼에 대해서는 현행과 같이 ‘허가제’를 유지한다.
◆ “통합법의 목표와 초점 모호하다” 지적도
하지만 이날 세미나에선 정작 통합 미디어 법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용자 보호, 산업 진흥, 공공성 확보 등 통합미디어법이 포괄하려는 가치가 지나치게 많아 정책 목표가 분산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심우민 경인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단순히 ‘통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통합을 통해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그 효과와 결과를 기준으로 목적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OTT에 규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보면 규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인 규제 프레임워크가 부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한 제도 모방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내다보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단계적으로 구축했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로 기본법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충돌하는 가치들을 조정하거나 상호 양보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산업 진흥과 이용자 보호 역시 모두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과거 케이블TV 도입 당시에는 지역 독점 사업자였기 때문에 요금 승인제나 지역 채널 운영 의무가 적용됐지만 현재는 케이블TV 요금 인상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반면 2024년 초 OTT의 약 30% 요금 인상은 상당한 시장 파급력을 보였는데 이런 사례들을 놓고 볼 때 기존 틀을 넘어선 새로운 규제 수준 설정에 대한 고민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방미통위 리더십이 관건…컨트롤타워 필요”
그도 그럴 것이 미디어 정책을 불러싼 ‘밥그릇 싸움’은 역대 방통위(현 방미통위)에서 미디어 통합 법제 추진이 번번이 좌초된 배경이기도 하다. 미디어 정책은 방미통위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분산돼 있어 부처 간 소관 조율이 우선 과제로 꼽혀왔다.
노 소장은 “과거에 비해 규제·통제나 인허가권 측면에서 행정부의 역할이 축소된 측면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행정부의 역할은 권한의 크기만으로 평가되기보다 국민의 신뢰를 통해 기관의 위상을 형성해 나가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행정부는 통제자보다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더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며 “특히 AI를 포함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업자·이용자·정부 간 관계를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기능이 중요해질텐데 통합 미디어 법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과거 통합 미디어 법제나 방송법 개정이 지연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부처 간 이견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장애 요인이 상당 부분 해소된 지금이 오히려 중요한 시점일 수 있다”며 “앞으로는 방미통위의 역할과 더불어 당정 협의, 국회와 행정부 간 협의가 매우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방미통위와 별개로 미디어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방미통위의 정책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통합 미디어법을 제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실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솔직히 의문”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법안 초안 자체보다 정책 리더십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위원회와 같은 형태로 진흥과 규제를 총괄할 수 있는 정책 연구·집행 기구가 필요하다”며 “청와대 내에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비서관 등 정책 리더십을 상징하는 구조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해나 방미통위 미디어제도혁심팀 팀장은 “지난해 9월 방미통위 출범을 포함한 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민관 합동으로 다층적 미디어 발전위원회를 구성·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며 “미디어 발전위원회가 구성된다면 복잡한 쟁점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보다 신속하게 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미디어 통합 법제와 관련해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정의가 모호할 경우 규제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인플루언서의 공개 라이브 스트리밍까지 규율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특히 이용자 제작 콘텐츠를 법 체계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통상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 교수는 “이용자 제작 콘텐츠에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은 상당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국가가 공법적 의무를 부과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공익적 정당성과 보호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과 직결되는 영역인 만큼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남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미디어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글로벌 OTT를 대상으로 재무 정보 공개나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방안은 통상 마찰이나 국제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며 “결국 어느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 단계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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