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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단종 마지막 지킨 엄흥도… 애틋한 '휴먼 사극' 온다

파이낸셜뉴스 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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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단종 마지막 지킨 엄흥도… 애틋한 '휴먼 사극'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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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기대작 '왕과 사는 남자'
문종 외아들 단종의 비극적 삶 조명
엄흥도 역 유배지 촌장으로 재창조
유해진 특유 해학·인간미로 그려내
장항준 감독과 두번째 호흡 '기대'
'충보다 정'에 가까웠던 관계 주목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 박지훈(왼쪽)과 엄흥도 역 유해진 쇼박스 제공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 박지훈(왼쪽)과 엄흥도 역 유해진 쇼박스 제공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보고 많이 울었다. 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000만 영화 '왕의 남자'(2005)로 관객이 마음을 훔친 지 어느덧 20년. '베테랑'(2015), '택시운전사'(2017), '파묘'(2024)까지 4편의 1000만 영화에 이름을 올린 배우 유해진이 올해 설 사극 '왕과 사는 남자'로 관객과 만난다.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는 비운의 왕 단종(박지훈)의 마지막 1년과 그의 곁을 지킨 실존 인물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유해진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단종의 죽음과 그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들의 우정이 깊이 와 닿았다"고 말했다.

■단종의 마지막을 다시 묻다

세종대왕의 장남 문종의 외아들인 단종 이홍위는 열두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 수양대군(훗날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끝에 열일곱 나이로 생을 마감한 조선 제6대 왕이다. 사후 241년이 지나서야 복권됐으며 실록에는 '사망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어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러 설로 전해진다.


'왕과 사는 남자'는 이 역사적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운다. 영화 속 엄흥도는 강원도 영월 광천골의 촌장으로 재창조된 캐릭터다. 그는 귀한 신분의 인물이 머무는 유배지를 유치해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다 단종을 만나며 인생 방향이 바뀐다.

유해진은 "단종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한 인간으로서의 단종을 복원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짚었다.

장항준 감독 역시 "단종을 나약한 왕으로만 그리지 않고, 유배지에서 백성의 삶을 마주하며 '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 기록 어디에도 단종이 무능하거나 나약했다는 근거는 없다. 총명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보호자 없이 권력의 한가운데 놓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결말이 정해진 비극을 연출하는 데 대한 부담도 털어놨다.

장 감독은 "결말을 이미 알고 있고 밝은 이야기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작품을 맡지 않으려 했다"며 "그러나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결말을 알아도 이야기가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유해진 떠올리며 시나리오 작업"


엄흥도는 계산적이고 속내가 훤히 보이는 세속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밉지 않다. 해학미와 특유의 페이소스를 살린 유해진의 연기 덕분이다.

장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유해진을 떠올렸다"며 "대본보다 훨씬 큰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이후 두 번째 호흡으로, 유해진은 장 감독의 열린 태도 덕에 현장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탰다고 한다.

그는 "기와집을 짓는 장면에서 혼자 무를 먹으며 거들먹거리는 설정 등은 현장에서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는 후반부에 삽입된 단종의 물장난 신을 꼽았다. 이 장면은 애초 시나리오에 없던 설정이다. 한 스태프가 박지훈이 동강에서 손 씻는 모습을 찍어 올린 사진을 우연히 보고, 유해진의 제안으로 촬영이 이뤄졌다.

유해진은 "실제 단종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멀찌감치 그를 바라보는 엄흥도의 모습에서 (미혼이지만) 부모의 심정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영화에는 밥을 먹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장 감독은 "왕과 백성이 같은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그 장면을 통해 단종이 백성의 삶을 이해하고 백성 또한 '그래서 왕이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엄흥도와 단종의 관계는 충이라기보다 정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이야기에 잘 녹아드는 게 연기 비결"

유해진은 코로나19 이후 영화 산업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도 '공조2: 인터내셔널'(698만), '올빼미'(332만), '달짝지근해: 7510'(138만), '야당'(337만) 등 흥행작을 연이어 내놨다.

광기의 왕부터 촌부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웃으며 "잘 보면 크게 변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변할 뿐이고, 옷만 다르게 입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중요한 건 그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느냐"라며 "마음에 걸리는 신이 있으면 계속 본다. 그 상황을 되뇌고 또 되뇌이는, 다소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작업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본을 계속 들여다보다 보면 언젠가 무엇인가 튀어나온다. 그런 태도 자체가 배우로서 살아남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왕이 사는 남자'를 두고 "오랜만에 가슴을 뻐근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평했다.

유해진은 "'왕의 남자'는 내가 '왕과 사는 남자'를 찍게 해준 작품인데, 그 작품을 만든 감독이 좋게 봐줘 뜻깊고 감사했다"며 뿌듯해했다.

조단역부터 주역까지 충무로를 지켜온 배우에게 행복한 순간을 묻자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햇볕 좋은 날 현장에 있을 때, 사람들과 즐겁게 작업할 때, 끝나고 소주 한잔할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잘하자."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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