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의원’ ‘킹메이커’ ‘실세 총리’ ‘선거의 제왕’ ‘노회한 지략가’. 25일 별세한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에게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굵직한 분기점마다 핵심 역할을 했던 고인은 1972년 10월 유신(維新)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한 뒤 출소한 그는 1978년 모교인 서울대 녹두거리에 인문사회과학 서점인 ‘광장서적’을 열고 책방 주인이 됐다.
광장서적이라는 이름은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에서 따왔다. 광장서적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근거지였다. 당시 출판이 금지된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유통하는 동시에 사상 검열과 정치적 억압을 피해 모여든 청년들의 해방구가 됐다. 이 전 총리는 1979년 사회과학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하기도 했다. 광장서적은 고인이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동생 해만씨가 경영을 맡았다.
1980~1990년대 대학가에는 서울대 광장서적 외에도 연세대 ‘오늘의 책’, 고려대 ‘장백서원’, 성균관대 ‘풀무질’, 한양대 ‘한마당’, 중앙대 ‘청맥’, 동국대 ‘녹두’ 등이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들 서점은 2000년대 이후 전국학생대표자협의회·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 학생운동단체들의 쇠락과 함께 경영난으로 하나둘씩 문을 닫는다. 광장서적도 고시 수험서를 판매하는 종합서점, 커피숍과 문구점을 같이 운영하는 종합서점 등으로 변신했으나 온라인서점 및 대형서점과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하고 결국 2013년 폐업했다.
현재 서울대 녹두거리에는 ‘그날이 오면’이 서울대 동문과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자 지식공동체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생전에 광장서적에 대해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지만 시대를 수행하는 기지가 됐다. 책을 파는 게 아니라 시대를 팔았다”고 했다고 한다. 광장서적은 사라졌지만 인공지능(AI) 대전환의 시대에도 지식의 광장, 연대의 광장으로서 광장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
김정곤 논설위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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