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영정사진 직접 그리고파”…김영옥·김용림·손숙이 채색한 어느 노인의 꿈

경향신문
원문보기

“영정사진 직접 그리고파”…김영옥·김용림·손숙이 채색한 어느 노인의 꿈

서울맑음 / -3.9 °
연극 <노인의 꿈>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봄희(하희라)가 춘애(김영옥)에게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고 있다.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봄희(하희라)가 춘애(김영옥)에게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고 있다. 수컴퍼니 제공



여든한 살 백발 할머니 ‘춘애’가 미술학원에 조심스레 발을 내디딘다. “나 같은 노인도 학생으로 받아주나요?” 재정난으로 취미반을 없애고 입시반을 확대 운영할까 고민하던 ‘봄희’는 난감하다. 거절하려던 마음을 멈춰 세운 건 춘애의 말이다.

“내 영정사진, 내가 직접 그리고 싶어서요.” 춘애의 목소리는 그가 목에 두른 빨간 목도리 색만큼 쨍하고 발랄하건만 관객은 이 극이 눈물샘을 자극할 거라는 걸 직감으로 알게 된다.

연극 <노인의 꿈>은 미술 만학도 춘애가 봄희로부터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는 열 번의 수업을 보여준다. 이 수업은 일방향이 아니다. 봄희는 가부장적이던 아버지 ‘상길’를 원망하게 되는 마음 때문에, 연하 남편 ‘채운’의 고등학생 딸 ‘꽃님’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삐걱대는 사이 때문에 고민한다. 때마다 춘애는 그에게 다가가 대화해 보라고 용기를 준다.

연극 <노인의 꿈>의 봄희(하희라)와 춘애(김영옥).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의 봄희(하희라)와 춘애(김영옥).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 속  (왼쪽부터) 봄희(신은정), 상길(김승욱), 채운(이필모).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 속 (왼쪽부터) 봄희(신은정), 상길(김승욱), 채운(이필모). 수컴퍼니 제공


정석적이고 반듯한 가족극이다. 커다란 집 모양 구조물이 배경이 되는 무대에서 인물들은 가운데 나무문으로 입·퇴장한다. 다양한 모양의 창이 난 집 앞 공간은 미술학원이었다가, 봄희네 집이거나 상길이 혼자 사는 집이 된다. 목재·가죽 톤의 가구들과 아기자기한 소품은 백원달 작가의 동명 네이버웹툰 원작이 지닌 따스한 분위기를 무대 위로 옮기는 데 일조한다.

매사 툴툴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네 아버지같은 상길은 세상을 떠난 아내를 떠올리며 기타를 남몰래 배운다. 자꾸만 팅, 어긋나버리는 봄희와의 관계처럼 늘지 않는 기타를 붙잡고 연습하는 상길의 모습은 선 하나, 하나를 공들여 긋는 춘애의 모습과 대구를 이룬다.

배우 김용림(왼쪽부터), 김영옥, 손숙이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노인의 꿈>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김용림(왼쪽부터), 김영옥, 손숙이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노인의 꿈>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김영옥(89), 김용림(86), 손숙(82). 연기 경력만 도합 196년에 달하는 노장들이 춘애 역에 트리플 캐스팅되어 화제다. 박수희 수컴퍼니 대표는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귀엽고 힙하다(김영옥)’, ‘에너제틱하고 유쾌하다(김용림)’, ‘담담하고 깊이 있다(손숙)’”고 세 배우를 투과한 춘애의 매력을 꼽았다.


김영옥은 5년, 김용림은 7년 만의 연극 무대 복귀다. 두 사람은 무대에 서기까지 “망설여지고 겁이 났다”면서도 “작품을 보고 안 할 수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TV 가족드라마 부재 시대 같아요. 자극적인 것만 만들어서 성행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데, 우리 연극은 따뜻한 가족드라마이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전환점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김영옥이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작품’이다 생각하며 붙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김용림은 “작품을 하다보니 마음이 더 젊어지는 것도 같다”며 “나이 들어서도 여러 친구들과 무대에서 연극할 수 있는 게 행복하고 보람차다”고 했다.

연극 <노인의 꿈>에서 춘애 역을 맡은 배우 김용림.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에서 춘애 역을 맡은 배우 김용림.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에서 춘애 역을 맡은 배우 손숙. 수컴퍼니 제공

연극 <노인의 꿈>에서 춘애 역을 맡은 배우 손숙. 수컴퍼니 제공


극 중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는 춘애는 꿈을 놓고 살아가던 중년의 봄희와 채운에게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손숙은 “춘애를 보면서 반성했다”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 꿈이 있는 할머니가 있구나. 나는 꿈이 뭘까.” 그가 곰곰이 떠올려 본 소망은 “작은 역이라도 할 수 있는 때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눈 상태가 악화한 손숙은 이번에도 사전에 부탁한 녹음본을 들으면서 대사를 외웠다.


“나이 든 할머니가 대사 못 외워서 질척거리면 애들한테 미안하잖아요. 죽을 둥 살 둥 2시간씩 (녹음본을) 매일 들었어요. 사실 글씨를 못 본다는 게 슬프죠, 연극배우가. 그래도 그렇게 해야 무대에 설 수 있으니까 해야죠.”

봄희 역의 배우 하희라·이일화·신은정, 상길 역의 남경읍·박지일·김승욱, 채운 역의 강성진·이필모·윤희석 등 모든 역할이 트리플 캐스팅으로 다양한 연기 합을 만날 수 있다. 대중 매체로 익숙한 배우진의 연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건 극의 강점이다. ‘가족들과 함께 보기 좋은 연극’이라는 입소문까지 더해져 <노인의 꿈>은 초연인데도 초반 관객 확보에 성공하며 순항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3월22일까지.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