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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에 의존 실험 장비 국산화… 70여 국에 수출

조선일보 원주=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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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에 의존 실험 장비 국산화… 70여 국에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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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수기업] 연구용품 종합유통 기업 대한과학
국내 웬만한 이공계 실험실(lab)엔 파란색의 두꺼운 ‘백과사전’이 한 권씩 있다. 비커 하나, 시약 한 병 구하기 쉽지 않던 시절, 실험 장비와 용품의 스펙과 가격을 집대성해 연구원들의 ‘가이드’가 돼줬던 대한과학의 종합 카탈로그다.

강원 원주에 위치한 대한과학은 ‘연구 물품 구하러 다니는 시간을 아껴 연구에만 집중하게 해주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회사다. 초저온 냉동고와 멸균기, 건조기 같은 필수 실험 장비를 만들면서 연구실 사무용품과 소모품까지 한번에 공급하는 연구실험용품 종합 유통 기업이다.

장경식 기자대한과학의 초저온 냉동고 앞에 선 서정구 회장.

장경식 기자대한과학의 초저온 냉동고 앞에 선 서정구 회장.


3만여 종의 실험 기자재를 공급하는 대한과학은 ‘랩(lab) 시장의 아마존’으로 통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엔 영하 60~90도 초저온 보관이 필수였던 화이자 백신 접종을 위해 자신들이 국산화한 초저온 냉동고를 전국 접종 센터에 공급해 국가 방역 병참기지 역할도 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선정한 ‘2025년 명문 장수 기업’ 중 연구실험용품 분야 기업은 대한과학이 유일하다.

◇연구원 시절의 불편이 창업 계기

대한과학 창업 스토리는 서정구(84) 회장의 불편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후반 조폐공사 연구원이었던 그는 실험 도구 하나를 장만하려면 청계천과 남대문 시장을 며칠씩 뒤져야 하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연구보다 물건 구하는 게 더 힘들어서야 되겠냐’는 문제의식은 1980년 대한이화학상사(대한과학의 전신) 창업으로 이어졌다.

대한과학대한과학의 유리 가공 공장에서 한 직원이 시료 등을 안전하게 배출하는 데 쓰이는 부품(반응조 드레인 밸브)을 고열로 가공하고 있다.

대한과학대한과학의 유리 가공 공장에서 한 직원이 시료 등을 안전하게 배출하는 데 쓰이는 부품(반응조 드레인 밸브)을 고열로 가공하고 있다.


당시 국내 연구용품 시장은 영세했고 제품 정보는 주먹구구였다. 서 회장은 해외 전시회를 돌며 공급선을 발굴했고, 세계 40여 제조사와 계약해 약 2만 종의 제품을 확보했다. 이를 집대성한 것이 1999년 발간한 ‘대한 종합 카탈로그’였다. 실험 장비와 소모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든 국내 최초의 ‘연구 실험 용품 백과사전’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 연구실 조달 방식은 한 회사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모델로 바뀌기 시작했다. 서 회장은 “웬만한 대학이나 연구소 연구실엔 이 책이 한 권씩은 있다”고 했다. 덕분에 대한과학은 국내외 270여 개 제조사와 협력해 국내 최대 규모의 공급망을 구축했다.

명문장수기업 로고 /중소기업중앙회

명문장수기업 로고 /중소기업중앙회


◇초저온 냉동고도 국산화

2003년엔 장비 제조업에도 뛰어들었다. 기초 실험 장비 국산화 없이는 산업이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실이 2008년 국산화에 성공한 초저온 냉동고다.


영하 80도 이하를 유지해야 하는 이 장비는 세포와 DNA 보관에 필수지만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왔다. 대한과학은 냉각 시스템을 이중화해 한쪽이 고장 나도 초저온을 유지하는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그 진가는 코로나 팬데믹 때 발휘됐다. 또한 건조기, 멸균기 등 핵심 실험 장비도 잇달아 국산화했고, 2011년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대한과학은 세계 최초로 실험 장비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 연구원이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으로 실험 장비의 온도와 상태를 제어하는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24시간 미생물 배양 등을 지켜봐야 했던 연구원들의 ‘워라밸’을 바꿔놓은 혁신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약 790억원으로 2019년 대비 40% 이상 늘었다. 현재 70여 개국에 이르는 수출 영토도 더욱 넓히고 있다. 의료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서 회장은 “국내에선 늘 경쟁사 없이 최초를 달려왔다”며 “의료기구 분야에서도 업계를 이끄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원주=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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