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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로 초전도체 만드는 ‘꿈의 연금술’, 준입자 실험서 첫 입증

동아일보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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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로 초전도체 만드는 ‘꿈의 연금술’, 준입자 실험서 첫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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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연구팀 ‘네이처 피직스’ 발표… 강력한 빛으로 에너지-물성 바꿔

일반 반도체서 초전도체 전환 등… 플로케 공학, ‘꿈의 기술’로 꼽혀

준입자 ‘엑시톤’ 활용한 첫 실험… 빛 의존 때보다 강한 플로케 보여

상용화되려면 지속 시간 늘려야
싱 주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OIST) 박사과정생이 강력한 레이저를 방출할 수 있는 시간각해상도 광전자분광법(TR-ARPES)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OIST 제공

싱 주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OIST) 박사과정생이 강력한 레이저를 방출할 수 있는 시간각해상도 광전자분광법(TR-ARPES)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OIST 제공


‘플로케(Floquet) 공학’은 강한 자극을 가해 물질의 양자 특성을 변환하는 분야다. 이론적으로 평범한 반도체를 초전도체처럼 바꾸는 등 혁신적인 기술을 구현할 수 있어 ‘양자 연금술’이라는 별명이 붙지만 구현 난도가 매우 높다. 과학자들은 이를 위한 해결사로 빛과 전기의 교차점 역할을 하는 준입자 ‘엑시톤(Exciton)’을 제시했다.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OIST)과 미국 스탠퍼드대 공동 연구팀은 엑시톤을 활용해 2차원 반도체의 플로케 효과를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연구 결과를 1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공개했다.

● 기술적 장벽 높지만 잠재력 있는 분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프랑스의 수학자 가스통 플로케는 약 100년 전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함수를 해석하는 이론을 만들었다. 물리학에서 빛은 전자기장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파동이다. 빛과 물질이 상호작용하는 동안 물질 내부의 전하들은 플로케가 수학적으로 설명한 움직임을 따른다.

2009년 일본 과학자들은 플로케의 이론에 따라 고체에 빛을 가해 주기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면 에너지 밴드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에너지 밴드는 물질 내부의 전하가 이동할 수 있는 에너지 대역을 말한다. 에너지 밴드의 형태에 따라 반도체, 부도체 등 물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빛으로 물성을 바꿀 수 있는 플로케 공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재동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화학물리학과 교수는 “과학자들은 플로케 공학에 새로운 종류의 트랜지스터 소자나 양자 정보회로를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플로케 현상을 일으키려면 매우 강력한 빛이 필요해 실험으로 입증한 사례가 매우 적다. 초강력 레이저 장치 등 정교한 장비와 환경이 필요하다. 빛이 너무 강하면 물질이 파괴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단순히 강한 빛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는 플로케 공학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2023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팀은 준입자 엑시톤의 주기적인 진동을 활용해도 플로케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이론적으로 제시했다. OIST와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강력한 레이저를 방출할 수 있는 OIST의 ‘시간각해상도 광전자분광법(TR-ARPES)’ 설비를 활용해 이를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엑시톤은 음전하(-)인 전자와 양전하(+)인 정공(hole)이 쌍을 이뤄 공존하는 준입자다. 준입자는 엄밀하게 말하면 입자는 아니지만 여러 입자가 상호작용해 나타내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입자처럼 다루는 개념이다.

물질이 에너지를 흡수하면 물질 내부의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가면서 원래의 에너지 준위에는 빈 공간인 정공이 생긴다. 이때 전자와 정공의 전기적 극성이 달라 서로 끌어당기지만 완전히 결합하지 않은 상태를 ‘엑시톤’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매우 얇은 2차원 반도체에 순간적인 파동인 펄스(pulse) 형태의 레이저를 가해 엑시톤을 형성했다.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이 끝난 후에도 엑시톤을 구성하는 전자 구조는 주기적으로 진동하면서 플로케 효과를 일으켰다. 엑시톤은 빛에 의존할 때보다 더 강하고 길게 플로케 현상을 일으켰다.

이 교수는 “빛 기반 플로케 현상은 보통 빛을 비추는 짧은 시간에만 에너지 밴드를 바꿀 수 있지만 엑시톤 기반 플로케 현상은 빛의 지속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변화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며 “기존 방식보다 허들을 낮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다른 준입자인 포논, 플라즈몬, 마그논 등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실용화까지는 여러 장벽 존재

플로케 공학이 실용 단계까지 가려면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먼저 아직 고체 물질 내 플로케 상태의 수명은 피코초(ps·1조분의 1초) 미만으로 매우 짧다. 플로케 상태를 연장하고 플로케 현상으로 물성이 변화된 시간 내에 전자를 조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보편적인 실험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레이저 기술도 상용화돼야 한다. 펨토초(fs·1000조분의 1초) 수준의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초강력 레이저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고 있지만 아직 비용이 매우 많이 들 것으로 판단된다. 이 교수는 “기존 전자공학의 트랜지스터 집적 기술처럼 플로케 공학 기반의 집적 기술도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초전도체

극저온에서 전자가 둘씩 ‘쿠퍼쌍’을 이뤄 움직이며 에너지 손실 없이 전류가 흐르는 물질을 말한다. 초전도 현상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나 양자컴퓨터 구동 등에 활용된다. 상온·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구현하면 산업 전반에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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