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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명의] “마음 건강 무너지면 공부 포기…성적보다 감정 먼저 살펴야”

서울경제 이금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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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명의] “마음 건강 무너지면 공부 포기…성적보다 감정 먼저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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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학업 성취, IQ보다 감정 조절력에 달려
공부에 대한 긍정 감정 가져야 결실
과도한 선행 아이 공부감정 다치게 해
빡빡한 스케줄과 통제는 번아웃 유발
기질 따른 공부법으로 성취 맛보아야
부모, 아이 쉴 수 있는 ‘안전기지’ 역할을


학업 성취는 IQ나 인지능력에 좌우된다고 믿어왔지만, 수십 년간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성취 역량은 ‘감정 조절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마음 건강이 무너지지 않도록 성적보다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인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2014년부터 13년째 소아·청소년을 진료해온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초·중·고 12년 장기레이스에서 지치지 않으려면 감정 조절이 중요하다”며 “공부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해오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놓아버리거나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제일 중요한 공부의 결실을 봐야하는 때 아이가 급격히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공부 감정’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공부 감정이란 학습과정에 느끼는 불안·수치심·성취감·질투·혐오감 같은 감정을 통틀어 말한다. 학습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자주 상처를 받고 그 경험이 축적되면 초등학교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가 중·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4일 저녁 9시에 방영되는 서울경제TV ‘지금, 명의’에서는 ‘소아청소년 학습 명의’ 김은주 교수가 출연해 아이들의 공부 감정과 공부 상처를 들여다보고 감정 조절 능력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아이 감정 해치는 ‘속도 강박’과 ‘과잉통제’

김은주 교수는 아이의 공부 감정을 해치는 가장 큰 문제로 과도한 선행을 꼽는다. 부모들이 ‘속도 강박’에 빠져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의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에서 아이는 어릴 때부터 공부와 시험에 대해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 결과, 초등학교 5·6학년 밖에 안 된 아이들이 “선생님, 저는 공부로는 안 될 것 같아요”라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에요”라고 말한다고.


속도 강박과 함께 김 교수가 강조한 두 번째 문제는 ‘과잉 통제’다. 선행 커리큘럼을 따라가려면 놀이가 들어갈 틈이 없고,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아이가 ‘기계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놀이는 스트레스를 풀고 감정 조절을 배우는 과정”이라며 “초2도 밤 10~11시까지 숙제 전쟁을 치르고, 고학년은 새벽 12~1시에 자는 경우도 흔하다“며 ”이런 생활이 누적되면 초등 고학년부터 번아웃이 온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보내는 ‘공부 상처’ 신호 3가지


그렇다면 부모가 놓치지 말아야 할 위험 신호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극단적 불안(공부가 안 되면 울거나, 시험 기간에 잠을 못 자고 공포 수준으로 긴장) ▲무기력·회피 (“어차피 해도 안 돼”라며 공부를 놓아버리는 상태) ▲분노·짜증 증가(공부 얘기만 꺼내도 폭발, 심하면 폭력·기물 파손)를 대표적인 ‘공부 상처’ 사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원인 불명의 두통·복통·어지럼 등 스트레스성 신체 증상도 흔하다고 했다. 김은주 교수는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꾀병’으로 넘기지 말고, 아이 몸이 보내는 과부하 신호로 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공부 감정을 망가뜨리는 대표적 부모 행동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실수 불허’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이다. “실수 하나면 등급 떨어져” 같은 말이 시험 불안을 키우고, 오히려 강박 때문에 실수가 늘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 학업 성취만을 최상 가치로 두는 태도다. 청소년 자존감은 학업뿐 아니라 외모·신체·사회성 등 여러 축으로 구성되는데, 학업만 강조하면 다른 강점을 살릴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셋째, 부모가 ‘아이 공부 매니저’로 살아가는 구조다.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에게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있고 관계를 망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아이 기질 따라 공부 감정을 살리는 해법

공부 감정을 살리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김 교수는 아이마다 기질이 다르므로 이에 따른 공부법을 실천하고 긍정적인 공부감정을 경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TCI(기질·성격 검사)는 소아정신과에서 널리 쓰이는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파악하는 검사로, 크게 ▲위험회피 ▲자극추구 ▲보상의존성 ▲끈기라는 네 가지 축으로 나뉜다.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아이들은 시험, 평가, 새로운 도전에 유독 불안해한다. 이런 아이들은 충분한 시간, 미리 세운 계획, 그리고 결과보다 과정을 인정받는 경험이 중요하다.

자극추구 기질이 높은 아이들은 겁은 없지만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지루해지면 바로 딴생각을 하고, 공부를 회피한다. 이런 아이들은 짧은 시간 단위의 학습, 명확한 목표, 즉각적인 보상과 성취감을 줘야 한다.

보상의존성이 높은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의 반응에 크게 흔들린다. 비교, 한숨, 실망한 표정 하나에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 점수보다 노력, 결과보다 태도, 비교가 아니라 아이 그 자체를 인정받는 경험이 공부 감정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끈기가 약한 아이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무기력과 회피로 빠지기 쉽다.아주 작은 과제라도 끝내는 경험, 성공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주는 것이 이 아이들의 공부 감정을 살린다.

◇아이가 쉴 수 있는 ‘안전 기지’ 마련을

기질은 달라도 모든 아이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부모가 ‘안전 기지’가 되어주는 것이다. 공부하다 지치고, 성적이 떨어지고, 실패해서 돌아왔을 때 부모에게 아이들은 위로받고 쉬어야 다시 세상으로 나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김은주 교수는 “아이들이 공부를 포기하는 순간은 대개 성적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무너졌을 때’”라며 “입시는 장거리 레이스인 만큼, 긍정적 공부 감정을 지키면 성적은 물론 ‘평생의 자산’을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금숙 기자 ks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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