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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시집살이…쎄가 빠지게 고생했네 [토요일 詩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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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시집살이…쎄가 빠지게 고생했네 [토요일 詩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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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

복순 씨의 아카이브


한 남자한테 시집왔는데 여자가 여섯인 거야


홀시어머니에 시누이가 줄줄이 사탕이라 도시락 몇 개 싸고 빨래에 치이다 보면 하숙집 주인이 따로 없더라니까 게다가 마늘 못 먹는 네 할미 덕에 들어간 놈 안 들어간 놈 구별하다 보면 반찬 가짓수로는 수라상 저리 가라였지 남편이 효자면 며느리가 생고생한다더니 한술 더 떠 며느리 저녁 하느라 동동거리는데 시어미 분단장하고 아들 마중 나간단 말이지 마누라 보듬지 못한 숙맥 같은 네 아빠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곰탱이 같은 나나 둘 다 헛똑똑이라 긴 세월 살았나보다 그대로 호마이카 밥상에서 재잘대던 너희 삼 남매가 내게는 박카스였어


성북동 파란 대문집 두 번 다시 가기 싫어


「시조시학」, 고요아침, 2023년 여름호.


이런 형식의 시조를 엇시조라 한다. 초장과 중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평시조보다 더 길어진 시조를 일컫는다. 사설시조는 초장·중장이 제한 없이 길며, 어떤 것은 종장도 길어진다. 이 시조의 초장은 5, 5, 3, 5이므로 조금은 파격이다. 하지만 종장은 3, 5, 4, 4로 시조의 음수를 잘 맞추고 있다. 이 시조는 중장이 하염없이 길어졌는데, 그 이유는 엄마가 아이들한테 하는 푸념이기 때문이다.

아주 힘든 시집살이였다. 요즈음 어떤 며느리가 등교 시간이 다른 다섯 시동생의 도시락을 싼단 말인가. 게다가 시어머니는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못 먹기 때문에 김치든 뭐든 따로 준비해야만 했으니 보통 고된 시집살이가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인권유린이다.


남편은 좋게 말하면 효자지만 실상은 마마보이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말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화자에게 낙이란 오직 무럭무럭 커가는 삼남매뿐이었다. '복순 씨의 아카이브'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시인은 끝에 가서 반전을 시도한다. 거긴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사진 | 고요아침 제공]

[사진 | 고요아침 제공]


자식 커가는 재미에 시집살이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그때 일을 돌이켜보니 성북동에 있는 파란 대문집 시집에는 두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경상도에서는 이런 고생을 '쎄(혀)가 빠지게 고생하다'고 한다.

화자는 시집살이가 워낙 힘들어 복날 개처럼 혀를 빼물고 있는 신세가 됐다고 한탄한다. 요즈음 엇시조나 사설시조가 종종 눈에 띄는데, 시조답지 않다. 역시 시조는 음수와 음보를 적절히 맞춰 써야 제멋이 난다. 그런데 이 시조는 중장의 파격에도 시조의 맛을 잘 지키고 있다. 박카스의 맛을.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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