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나이프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일상 휴대품(EDC)을 가지고 다니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핀터레스트 |
미 해군 최강의 특수부대 ‘데브그루’를 다룬 드라마 ‘씰 팀(Seal Team)’을 즐겨봤다. 실감 나는 전술과 큰 스케일의 전투 장면이 압도적인 군사극이다. 이 드라마를 일곱 시즌 보는 동안 정작 뇌리에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건 주인공 제이슨 헤이즈의 바지 주머니였다. 격렬한 근무를 마치고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동네 맥줏집을 가거나 수퍼마켓에 들를 때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빛나는 포켓나이프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 작은 디테일은 이 드라마의 감흥을 일상에서도 이어갈 수 있는 연결고리였다.
언제 어디서나 지니고 다니는 포켓나이프를 비롯한 생존 휴대품을 EDC(Every Day Carry)라 한다.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알겠지만 용어를 넘어 일종의 문화가 됐다. 그것도 남자들만의 문화다. 매일 가지고 다니는 생존 도구를 정갈하게 꺼내 놓거나 수집한 포켓나이프나 각종 생존 용품을 정렬해 사진을 찍는다. 이른바 ‘왓츠 인 마이 백(What’s in my bag)’의 남자 버전이다.
여러 생존도구들을 어떻게 휴대할 것인가가 EDC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ridge |
EDC 문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싹텄다. 공기처럼 존재하던 일상과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영국의 생존 전문가인 베어 그릴스가 야생 생존 다큐 콘텐츠로 지핀 야성의 불이 도심으로 옮겨졌다. 생존 도구에 대한 정보와 그날의 휴대 생존 물품을 올리고 서로 품평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소셜 미디어의 인증 문화와 만나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정착했다.
EDC의 가장 큰 매력은 야생에 대한 판타지와 실용성을 충족할 뿐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을 꾸려갈 수 있다는 데 있다. 현대의 남성은 소비 생활을 통해 야성을 달랜다. 1980년대 남성들의 판타지였던 맥가이버 칼이 어떤 위기든 해결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의 상징이라면 오늘날 EDC의 상징인 포켓 나이프는 현대 남성의 취향을 드러내는 텍스트다.
항상 손에 닿는 곳에 두고 일상 활동에서 편리함을 제공하는 개인용 키트를 구성하는 것도 EDC의 핵심 유희이자 문화다 /핀터레스트 |
2026년 세상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는 ‘씰 팀’의 에피소드 이상이다. 유비무환의 마음과 오늘 하루 임전무퇴의 다짐을 담아 포켓 나이프 하나 바지에 꽂고 현관을 나서자. 물론 택배 받을 때 외에는 쓸 일이 없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일종의 부적이라고 생각하자. 국내법상 날 길이가 6㎝ 넘는 포켓 나이프는 휴대하면 안 된다는 점은 반드시 기억하자.
생존 파우치를 꾸리고 관리하는 것도 EDC문화의 한가지 요소다 /핀터레스트 |
[김교석 칼럼니스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