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아이뉴스24 언론사 이미지

'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16년 침묵 깼다 [현장]

아이뉴스24 김민지
원문보기

'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16년 침묵 깼다 [현장]

서울맑음 / -3.9 °
노후 주택단지 철거 착수⋯3178가구 '자이' 브랜드 단지 조성
숲세권·학원가 강점에 용적률 인센티브 받으며 사업성도 확보
장기간 공전하다 사업 본궤도 올랐지만 '세계유산 규제' 새 변수
[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려온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이 16년 만에 본궤도에 올랐다. 3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브랜드 아파트 조성이 가시화되며 노원구 주거 지형을 바꿀 상징적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유산 규제라는 새로운 변수가 떠오르면서 첫삽을 뜨자마자 또다시 사업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 인근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김민지 기자]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 인근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김민지 기자]



21일 찾은 하계역 인근 백사마을은 한낮임에도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곳곳에는 '재개발 사업구역 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철거 중장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철거가 마무리되면 올 상반기 중 30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백사마을은 오랜 시간 개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곳이다. 1960년대 서울 용산·청계천 일대 도심 개발 과정에서 이주한 철거민들이 불암산 인근에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이다. 약 1100가구가 거주하던 이곳의 옛 주소가 '산 104번지'여서 백사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얼기설기 노후주택이 집중된 이 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주민 갈등과 정책 변화 등으로 사업은 여러 차례 중단됐다. 이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사업시행자로 참여하고, 노원구와 서울시가 협의를 이어가며 재개발 추진 기반을 다진 끝에 사업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비사업을 통해 최고 35층 26개 동, 총 3178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조성될 계획이며 이 중 565가구는 임대주택이다. 시공은 GS건설이 맡았고, 단지명은 불암산 숲세권 입지를 반영한 '네이처시티자이'로 확정됐다.


중계동 은행사거리 학원가와 가깝고 불암산을 끼고 있어 숲세권 환경을 갖췄다. 하계역·중계역(7호선), 노원역·상계역(4호선) 접근성도 양호하다. GTX-C 노선이 석계역을 지날 예정이어서 중장기 교통 여건 개선 기대도 나온다.

서울시는 백사마을을 기점으로 노원구 전반의 정비사업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곳의 대규모 재개발이 가시화되면서, 그동안 정체돼 있던 인근 지역 정비사업 전반에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해 하반기 상계·중계·하계동 일대 택지개발지구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공지하며 재건축 추진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개별 단지 차원의 정비를 넘어, 지역 전체를 묶어 체계적으로 개발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9월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백사마을 현장을 직접 찾아 "이곳은 더 이상 달동네가 아닌,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벽 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통합의 상징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며 "철거부터 착공·준공·입주까지 전 과정을 신속하고 투명하게 추진해 차질 없는 공급으로 이어가자"고 주문했다.


다만 최근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 반경 500m 이내에서 추진되는 정비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백사마을 재개발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백사마을 재개발 구역이 태릉과 강릉 세계유산 영향권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세계유산 인근에서 대규모 건물 공사나 소음·진동·대기오염 등이 문화유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경우, 국가유산청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 38곳이 영향권에 들어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를 비롯해 조선 왕릉인 △선정릉 △의릉 △정릉 △태강릉 △헌인릉 인근 사업장들이 포함된다. 자치구별로는 성북구가 26곳으로 가장 많고, 이어 종로구 4곳, 중구 3곳, 강남구 3곳, 노원구 2곳 순이다.

이미 착공을 앞둔 사업이라 하더라도, 제도 적용 범위와 방식에 따라 일정 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백사마을 재개발 역시 향후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 철거가 한창인 모습이다. [사진=김민지 기자]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 철거가 한창인 모습이다. [사진=김민지 기자]



이런 흐름 속 전문가들은 백사마을 재개발이 갖는 구조적 의미에 주목한다. 공공이 사업 전면에 나서 용적률 인센티브 등 제도적 지원으로 사업성을 확보한 뒤, 이를 민간 브랜드 단지로 완성하는 방식은 그동안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온 노원구 정비사업의 새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계역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노원구 구축 아파트는 중소형 위주로 조성돼 가구당 대지지분이 낮고, 기본 용적률이 이미 높은 단지가 많다"며 "이 때문에 재건축을 통한 추가 물량 확보가 어려워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노원구 내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 비율은 43.2%로, 도봉구(49.2%)와 종로구(43.2%)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이처럼 높은 노후 주택 비율과 낮은 사업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던 노원구 재개발 사업은, 백사마을에 사업성 보정계수가 적용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사업성 보정계수는 토지가격이 낮은 정비사업지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백사마을을 포함해 월계동 등 노원구 내 여러 정비사업지가 이를 서울시에서 적용받으며 추진 속도를 내고 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 연구원은 "백사마을 재개발은 단순히 한 곳의 주거 환경 개선을 넘어, 그동안 사업성이 낮아 정비가 더뎠던 강북권 재개발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 라며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그동안 사업성이 낮아 주저하던 강북권 민간 정비사업에도 일정한 자극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분양가, 사업 속도, 규제 변수 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과의 체감 정도는 달라질 수 있어, 향후 진행 과정이 중요해보인다"고 덧붙였다.

사업성 개선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시장에서는 분양가와 시세에 대한 관측도 나오고 있다. 조합원 추정 분양가는 평당 2000만원대 중반 수준으로 거론되며, 이를 감안하면 업계에서는 일반분양가를 평당 2600만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인근 신축 아파트 시세가 평당 3000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실제 인근 단지 거래 사례를 보면 중계동 은행사거리 인근에서는 1996년 입주한 청구3차 아파트가 올해 1월 전용 84㎡ 기준 14억원에 거래됐고, 1993년 입주한 동진신안아파트도 전용 101㎡ 기준 13억원을 웃돌고 있다. 2020년 입주한 ‘노원센트럴푸르지오’는 전용 84㎡가 11억원, ‘포레나노원’은 13억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노원역 인근 공인중개사 B씨는 "백사마을 재개발이 완료되는 2028~2029년에도 인근 아파트 시세가 현재와 비슷한 11억~12억원 선을 유지한다면, 신축·대단지·브랜드 프리미엄을 감안해 분양가 대비 일정 수준의 시세 차익이 형성될 가능성도 거론된다"며 "현장에서는 이를 3억~4억원 안팎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김민지 기자]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김민지 기자]



현장 주민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재개발로 동네 분위기는 좋아지겠지만, 노원구까지 집값이 더 오르면 결국 무주택자들은 이 동네에서 내 집을 마련할 기회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중계동에 거주 중인 또 다른 주민은 "숲세권에 조용한 환경이라는 점에서 은퇴자나 가족 단위, 재택근무 수요에게는 충분히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6년간 멈춰 있던 백사마을은 이제 다시 공사 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공공의 지원 속에 출발한 이 상징적 사업이 제도 변화라는 또 다른 문턱을 넘어 계획대로 완주할 수 있을지, 노원구 안팎의 시선이 동시에 쏠리고 있다.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 철거가 한창인 모습이다. [사진=김민지 기자]

1월 21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에 철거가 한창인 모습이다. [사진=김민지 기자]



/김민지 기자(itismjkeem@inews24.com)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