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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5주년 특별기획] 과거로의 생태기행 45. 백성을 울린 진상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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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5주년 특별기획] 과거로의 생태기행 45. 백성을 울린 진상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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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억지를 부릴 때 흔히 진상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이 부정적인 단어 '진상'의 어원을 조선 시대 진상(進上) 제도에서 찾는 이가 많다.

진상(進上)은 본래 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등의 지방 장관이 각 지역 토산물이나 진귀한 물건을 왕에게 상납하던 제도였다.

처음엔 왕에 대한 의례적인 헌납 형태로 이뤄졌으나 차츰 민가에 세금처럼 할당돼 백성을 괴롭히는 폐단을 낳았다.

왕실 밥상에 올릴 식재료를 비롯해 제향·접빈·사여(하사품을 내려줌) 등에 필요한 수많은 물품을 진상을 통해 조달했으니 각각의 진상품을 할당받은 백성과 운반 책임자 등 관계자들은 매번 고역을 치러야 했다.

공납의 다른 한 축인 공물도 폐단이 많긴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모든 공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17세기 들어 현물을 쌀·베·돈으로 대납하게 하는 대동법을 시행했으나 진상만큼은 여전히 현물로 받아들여 그 폐단이 사라지지 않았다.

# 종류도 가지가지였던 진상 진상은 종류도 다양했다.

우선 왕실에 음식과 식재료를 상납하는 물선(物膳) 진상은 삭선(朔膳) 물선·명일(名日) 물선·별진하(別陳賀) 물선 등이 있었다.


삭선 물선은 매월 초하루에, 명일 물선은 각종 명절에, 별진하 물선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행해지던 진상이다.

또 각 도의 특산물이나 고급 물품을 왕실에 바치는 방물(方物) 진상도 각 명절에 올리는 명일 방물과 왕의 행차 시 올리는 행행 방물, 왕의 강무 때 올리는 강무 방물, 왕실의 경사에 올리는 칭경진하 방물 등이 있었다.

해마다 첫 수확물 등을 왕실 제사나 국가 제례에 올리는 제향·천신(薦新) 진상과 각 지역의 토산 약재를 상납하는 약재 진상, 매(鷹)와 같은 특수 동물을 바치는 응자(鷹子) 진상도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특별한 행사나 사안에 따라 이뤄지던 별례 진상과 중국 왕실에 공물을 보내던 진헌(進獻)까지 있었다.

진상의 종류가 이처럼 다양했으니 각각의 진상을 맡은 해당 관청 관계자들은 거의 일년내내 진상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더욱이 진상의 품목과 시기, 상납 방식 등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어 큰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 충청도에서 연평균 110건 진상 전국 각 도에서 한 해에 몇 건을 진상하고 진상품 종류는 얼마나 됐는지 '여지도서'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까지 전국 295개 읍지(邑誌)와 17개 영지(營誌), 1개의 진지(鎭誌)를 합쳐 편찬한 지리지로, 18세기 조선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여지도서에 기록된 진상 건수(1757~1765년까지 9년간)는 모두 6602건으로 한 해 평균 734건의 진상이 이뤄졌다.

도별로는 경상도 1343건, 황해도 1294건, 전라도 1143건, 충청도 990건, 강원도 881건, 함경도 778건, 평안도 131건, 경기도 42건이다.

진상 건수가 가장 많은 경상도의 경우 연평균 150건, 월평균 13건 가량 행해졌다.

충청도의 경우는 연평균 110건, 월평균 9건 정도 진상이 이뤄졌다.

전국 팔도에서 궁궐에 바친 진상품의 총 종수는 1274종인데,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면 960종 정도로 파악된다.

이는 식재료와 함께 약재 등이 포함된 숫자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통계 수치가 전부가 아니란 점이다.

여지도서 외에 공선정례, 춘관통고 등의 여러 문헌에도 각 시대의 진상 기록이 수록돼 있어 건수와 품목 수는 더 많다고 봐야 한다.

# 왕실에 올려진 물선… 줄인 게 166종 조선 시대 왕실에 어떤 물선(음식과 식재료)이 진상됐는지는 '공선정례(貢膳定例)'에 잘 나타나 있다.

공선정례는 정조가 1776년 즉위하던 해 물선을 포함한 공선의 종 수를 줄이거나 없애면서 그 내용을 정리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 의하면 전국에서 대전·왕대비전·혜경궁·중궁전·세자궁에 진상한 물선의 종 수는 모두 166종이다.

이는 공선이 정비된 뒤의 숫자임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는 더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선을 종류별로 보면 조류(鳥類) 2종, 포유류 5종, 어류(생선·생선젓) 45종, 연체동물(문어·오징어·조개류) 22종, 절지동물(게·새우) 3종, 극피동물(해삼) 2종, 자포동물(해파리) 1종, 해조류 8종, 식물성(곡류·나물류·과일류·정과류) 73종, 버섯류 3종, 기타(꿀류) 2종이다.

상하기 쉬워 운반과 포장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물선이 제법 많았다.

생은어·생빙어·생쏘가리·생연어·생황어·생게·생굴·생오징어·생문어 등이 그렇다.

또 맛과 식감을 높이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까다로운 물선도 들어 있었다.

전복 가공품인 조복·인복·추복·장인복·단인복이 그에 속했다.

# 진상의 폐해 사례 진상으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많았으면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에서 어렵지 않게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연산군 2년(1496) 12월 11일 충청도 경차관(지방의 민정을 살피던 임시직) 최부가 돌아와 아뢰길, "충청도의 역마가 쇠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생물을 진상할 때 생은어 10여 상자만 되어도 상등 말에 얼음꾼까지 실려서 상하지 않도록 길을 배나 달려 몰아갑니다.

이로 인해 말이 병들거나 죽는 경우가 생겨 말 한 마리 값이 무명 백여 필까지도 이르니, 가난한 역리로서는 갑자기 마련할 수 없어 가산을 탕진하게 되기에 역로(驛路)가 모두 쇠잔해졌습니다."라고 했다.<연산군일기> 당시만 해도 진상품이나 공물, 사신들의 짐은 대부분 역마를 이용해 실어날랐다.

따라서 생은어처럼 상하기 쉬운 진상품의 경우엔 정해진 날짜 안에 도착시키기 위해 말을 두 배로 재촉해 몰아댔으니 상등 말인들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말이 병들어 죽고 가산이 탕진되어도 어디에 하소연하지 못했던 역리들이 진상품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은어보다도 더 쉽게 상하는 물고기가 빙어였다.

공선정례에 따르면 함경도에서 매년 음력 11월에 대전을 비롯한 5개 궁에 생빙어를 진상했다.

마릿수는 모두 합쳐 70마리에 불과했으나 추위와 눈길을 뚫고 제때 운반하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역리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물선 가운데에는 생꿩과 햇꿩도 있었는데 진상을 맡은 이들에겐 큰 골칫거리였다.

꿩 몸에 매 발톱 자국 등 조그만 흠집이 있어도 진상품으로 받아주지 않아 꿩 잡는 매를 놔두고 부득이 맨손으로 잡아야 했다.

시간은 촉박한 데 야생 꿩을 온전하게 잡으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폐해는 임진왜란 중 한 신하가 상처 있는 꿩이라도 받아줄 것을 건의하자 선조가 허락하면서 사라졌다.<선조실록> 진상할 은어를 잡기 위해 하천에 독약을 풀었다가 온갖 수생동물을 죽게 하고 약 성분이 논으로 흘러들어 벼 피해까지 입힌 사례도 있다.<문종실록> 수라상에 오를 은어를 독약을 써서라도 잡게 만든 게 진상 제도였다.

# 진상은 자연도 떨게 했다 진상은 사람만 떨게 한 게 아니었다.

진상의 대상물인 동식물도 떨게 했다.

포유동물 중에는 토끼·노루·사슴·멧돼지 등이 진상 때만 되면 사람들에게 쫓기며 떨어야 했다.

뱀도 약재로 진상됐는데 본격화한 배경에 연산군이 있다.

연산군이 몸이 불편해 조회에 자주 늦자 경기도 관찰사가 뱀을 한 상자 진상했더니 매일 바치라고 했다.

<연산군일기> 뱀잡이 전문 땅꾼의 등장 시기를 이 무렵으로 보는 이유이다.

온갖 구실로 진귀한 물품 일년 내내 거둬들여왕실 밥상에만 물선 160여종 올려져진상 때만 되면 동식물까지 '벌벌'충청도 평균 연 110건·월 9건 진상은어 등 상하기 쉬운 생선 골칫거리뱀도 올라… 연산군 때부터 본격화각종 폐해 사례 역사서에 '수두룩' 진상,조선시대,진상제도,상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