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업계는 호황과 불황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이번 공급 부족 사태는 특히 심각하다. 메모리 업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메모리 업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공급 부족 사태를 겪었지만, 그 중 일부는 메모리 폼팩터 변경이 최소한 부분적으로 원인이었다. 예를 들어, DDR4 같은 구형 메모리에서 DDR5로 넘어갈 때 전환이 꽤 급격했고, CPU나 GPU 마이그레이션에 비해 전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현재 메모리 업계는 핵심 공급사가 3곳이나 되는 구조이지만, 역사상 최악의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메모리 시장 전문 리서치 회사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최근 DRAM 평균 가격이 이번 분기에 2025년 4분기 대비 50%~55%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삼성도 최근 비슷한 경고를 내놨다.
가장 큰 원인은 AI다. AI 중심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사실상 메모리 공급 대부분이 데이터센터로 흡수됐다. AI는 거대한 데이터 세트를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메모리를 필요로 한다. 전통적인 서버는 보통 32GB~64GB 메모리를 탑재하지만, AI 서버는 128GB 이상을 탑재한다.
IDC 디바이스 및 소비자 리서치 그룹 부사장 톰 마이넬리는 “메모리는 전형적인 호황·불황형 부품 산업이다. 지금은 메모리 업체에 호황이어서 해결할 수 있더라도 문제를 서둘러 풀 이유가 크지 않아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메모리 업체가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이른바 “돈을 쓸어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희석할 이유가 없다. 마이넬리는 설령 공급을 늘리려 해도 생산능력 확대에는 최소 12~18개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다. 업계는 DDR4에서 DDR5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으며, DDR5 생산이 본격화되는 동안 DDR4는 점차 퇴장하고 있다. 새 메모리 폼팩터로의 전환은 결코 빠르거나 쉽지 않으며, 완전한 전환에는 대개 수년이 걸린다.
클라이언트와 서버 양쪽에서 수요도 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10 지원을 종료하면서 윈도우 11 시스템으로 노트북 교체가 대거 진행되고 있으며, 신형 노트북은 AI 서버와 같은 DDR5 메모리를 탑재한다.
3대 메모리 업체 외에도 중국의 일부 소형 업체가 있지만, 마이넬리는 그런 업체가 “판도를 바꿀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메모리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사용이 급증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GPU 가속기 도입이 확산되면서 HBM 수요가 급증했다. HBM은 메인보드에 꽂는 표준 메모리 모듈과 달리, GPU 카드에서 GPU 바로 옆에 배치되는 메모리다.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은 HBM을 만들 때 DDR 1바이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메모리 웨이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오브젝티브 애널리시스(Objective Analysis)의 대표 짐 핸디는 “HBM 1바이트는 DDR보다 약 3배 더 많은 실리콘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웨이퍼도 3배 더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HBM이 메모리 사업에서 10%를 차지하면 웨이퍼 기준으로는 30%를 사용하는 셈이어서 영향이 매우 크다. 핸디는 메모리 제조사가 오랫동안 다이 축소로 용량을 늘려 왔다고 말했다. 더 미세한 공정 노드로 갈수록 웨이퍼 한 장에서 더 많은 메모리를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웨이퍼 생산능력을 늘리지 않고 웨이퍼당 메모리 생산량 증가로 버텼다는 설명이다.
이제 메모리 업체는 실제로 생산능력을 확대해야 한다. 핸디는 “새 생산시설을 지어야 하고, 여기에 들어갈 장비도 사야 한다. 장비 수급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1~2년 전에 주문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메모리는 분기마다 수요가 바뀌기 때문에 메모리 제조사가 미래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 핸디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따라잡기가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두 전문가는 메모리 부족 사태가 최소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몇 가지 지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우선 관세는 가격 상승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은 한국 업체이지만, 관세는 가격 급등의 원인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OEM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가격 상승분을 흡수하고 있으며,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도 동의했다. 다만 가격이 계속 오르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마이넬리는 “현재까지 여러 업체가 가격 인상 얘기를 꺼냈다는 말을 듣지 못했지만, 가격 인상이 아직 실제 판매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며, “지금 채널로 출하돼 판매되는 시스템 대부분은 극적인 가격 인상이 시작되기 전에 출하된 물량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시장 관점에서 보면 2026년에 시장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지만, ASP는 유지되거나 오를 가능성이 있다”라며, “전체 매출은 크게 나빠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출하량 측면에서는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두 전문가는 AI 거품 붕괴가 실제로 일어나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멈추면 수요도 멈춰 공급이 풀릴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핸디는 “수요가 생기기 전에 먼저 돈을 쓰기로 결정하면, AI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고 예측하는 셈이어서 매출 대비 자본 지출 비중이 커진다. 현재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기업이 바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불만이 나오면, 투자 속도를 줄일 것이고, 그 순간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넬리는 “데이터센터에서 하이퍼스케일러를 포함한 사업자가 RAM을 대거 탑재하고 모든 RAM을 GPU에 연결해 쓰고 있는 만큼, 이들이 속도를 늦출 조짐이 있는지 면밀히 지켜볼 것이다. 하지만 1월 중순 현재로는 그런 움직임을 보여주는 징후가 거의 없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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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Patrizio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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