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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AI 확산에도…‘석유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적book적]

헤럴드경제 신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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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AI 확산에도…‘석유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적book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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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도 여전한 석유의 존재감
러-우크라전·이스라엘-하마스전도
독일·캐나다는 정권이 바뀌기도 해
해상 가스전 탐사 장면.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한국석유공사 제공]

해상 가스전 탐사 장면.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한국석유공사 제공]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석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는 지금까지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여겨졌다. 패권국가로서 미국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습격, 전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준 1~2차 오일쇼크, 1990년대 걸프전,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현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그 배경에서 석유를 분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로 탄소 중립 필요성이 커지고 AI(인공지능)가 일상화된 21세기에도 과연 석유의 존재감은 여전할까.

수년간 석유 시장 등을 연구한 에너지 전문가인 저자는 신간 ‘석유 제국의 미래’에서 전쟁과 동맹, 경제위기의 이면에는 언제나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작동해 왔고, 에너지 전환과 탄소 중립 논의가 이뤄지는 오늘날 역시 유효하다고 진단한다. 석유는 사라지는 자원이 아니라 신기술과 신산업을 떠받치는 에너지로서 여전히 세계 경제와 정치의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발생한 국제적 사건들 역시 석유가 글로벌 권력이나 금융, 외교, 전쟁 등에 영향을 미치며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저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전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푸틴이 자국내 에너지 주도권을 가져온 것과 연관이 있다. 그는 옐친 정부 시기 석유회사 유코스가 가져갔던 석유 자산을 다시 국영화하면서 매년 5~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 러시아 재건에 성공했다. 여기에 독일과 바로 연결되는 가스관 공사가 마무리되자 그간 중간에서 가스 수출 통행료를 받았던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수 있었다.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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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중동 국가 사이에서 하마스와 이란을 공격하는 무모한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가스 자원을 확보해서 가능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중동 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석유나 가스를 미국이나 중앙아시아 등 멀리서 수입해야 했다. 하지만 2009년 타마르 광구, 2010년 레비아탄 가스전 등에서 대규모의 가스를 발견해 자원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전환했다. 가스 수출로 연 4% 이상의 경제발전과 함께 이란을 제외한 중동 국가들과 사이가 좋아졌다. 팔레스타인 지구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유럽 국가들이 격렬히 반대하지 못했던 것도 이스라엘산 가스를 수입하지 못할까봐였다.

굳이 분쟁지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석유 등 화석연료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했지만, 오히려 에너지 가격 폭등 등 물가 상승을 부추겨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일부 국가에선 정권이 교체될 정도였다.

실제로 유럽에서 탄소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독일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탈원전을 동시에 추구했지만 여전히 탄소 배출 1위의 오명을 못 벗고 에너지 가격만 올려놨다. 탄소 배출이 적은 가스 발전도 함께 줄였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2월 총선에서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을 약속한 중도 우파 정당들이 승리해 가스 화력 발전소의 대규모 증설을 결정했다. 캐나다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 및 탄소세를 도입한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독일과 같은 이유로 지지율이 하락, 사임을 발표했다. 후임 총리인 마크 카니는 탄소세 폐지 및 자국 내 석유·가스 생산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올바른 비전이 있더라도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 현실적 고통을 불러오면 그 정책은 동력을 잃는다”면서 “각국의 에너지 접근성, 지리적 조건, 제조업 비중 등을 따져 국가별로 각기 다른 최선의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 제국의 미래/최지웅 지음/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