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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승우 칼럼] 우리의 노동법은 아직 '표준 노동자'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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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승우 칼럼] 우리의 노동법은 아직 '표준 노동자'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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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추승우]
현행 노동법 체계는 여전히 정규직·전일제·대기업이라는 전형적인 ‘표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베이비뉴스

현행 노동법 체계는 여전히 정규직·전일제·대기업이라는 전형적인 ‘표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베이비뉴스


노동법은 본래 가장 약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구조적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과 책임을 사회가 함께 나누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노동법이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법이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현행 노동법 체계는 여전히 정규직·전일제·대기업이라는 전형적인 '표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하나의 사업장에 상시 출근하고, 명확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정해진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법과 제도가 구축돼 온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형이 이미 노동현장의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노동현장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노동자와 대리운전기사, 학습지 교사와 보험설계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프리랜서, 단시간·초단시간 노동자는 더 이상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특히 청년, 여성, 고령층일수록 이러한 비정형 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은 더욱 높다.

그러나 노동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법의 보호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이들 다수는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인정받기까지 긴 시간과 높은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예컨대 플랫폼을 통해 배달 일을 하는 한 노동자는 매일 정해진 시간대에 앱에 접속해 콜을 수행하고, 배달 방식과 동선, 고객 응대까지 플랫폼이 정한 기준에 따라 일한다. 배달을 거부하거나 이용자 평가가 낮아지면 콜 배정이 줄어들고, 사실상 일자리를 잃게 된다.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에 의해 통제되는 구조지만, 계약서상 그는 '개인사업자’다. 이로 인해 산업재해를 당해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기 어렵고,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도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할 수 없다. 노동의 실질과 법적 지위 사이의 괴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노동조합법 등 핵심적인 보호 장치 앞에서 이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질문은 늘 같다.


"당신은 노동자인가?"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입증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 노동현장에서 누군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고 있음에도, 계약서상 명칭이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보호의 문턱에서 배제된다.

학습지 교사나 보험설계사, 방송·콘텐츠 분야 프리랜서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의 교육과 지침에 따라 일하고, 실적 평가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며, 사실상 사용자에게 종속된 구조임에도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분쟁이 발생하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이 닫히고,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개별 사건마다 소송이나 행정 분쟁을 통해 노동자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비용·심리적 부담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가장 약한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노동법이, 오히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가장 높은 문턱을 요구하는 셈이다.

노동법은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법 조문에 아무리 '보호’라는 단어가 많아도,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법은 보호가 아니라 장벽이 된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노동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고, 그 틈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산업재해, 소득 공백, 계약 해지의 위험 앞에서 이들은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갖지 못한 채 홀로 서 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노동이나 프리랜서 형태를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그러한 방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미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실패로 봐야 한다.


이제 노동법은 하나의 '표준 노동자’를 상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계약의 형식이나 명칭이 아니라, 실제 노동의 실질을 기준으로 보호 범위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노동의 이름이 무엇이든, 누군가의 지휘·관리 아래에서 생계를 위해 일한다면 최소한의 보호는 보장돼야 한다는 원칙이 분명히 자리 잡아야 한다.

노동의 형태는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 변화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기존 법체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노동을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다. 법이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노동법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무의미한 규범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부 직종을 예외적으로 포함시키는 식의 부분적 보완이 아니다. 노동법이 전제하고 있는 '노동자상’ 자체를 재검토하고, 보호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노동법이 다시금 가장 약한 사람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변화한 노동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추승우. ⓒ추승우

칼럼니스트 추승우. ⓒ추승우

*칼럼니스트 추승우는 노동·노무·인사 분야 전문가로,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과 제도개선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국선노무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노무법인 정운 대표노무사로 재직하며 근로자와 사용자가 노동관계 법령을 준수하고 공정한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제10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2018~2022)으로 활동하며 교통위원회, 운영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더불어민주당 서초구 을 지역위원장과 노동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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