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무나섬의 동굴에서 나온 6만7800년 전 손도장 그림. 단순히 손을 대고 물감을 뿌린 게 아니라 손가락 끝에 덧칠해 발톱 달린 동물처럼 만들었다./호주 그리피스대 |
인도네시아 동굴에서 나온 손도장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로 확인됐다. 단순히 손을 대고 물감을 뿌린 게 아니라 손가락을 발톱 모양으로 덧칠한 그림이었다. 이번 발견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술라웨시를 경유한 북부 경로를 통해 호주까지 이주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평가됐다.
막심 오버트(Maxime Aubert) 호주 그리피스대 교수 연구진은 “술라웨시섬 남동부 무나(Muna)섬의 리앙 메탄두노(Liang Metanduno) 동굴 유적지에서 최소 6만7800년 전에 인류 직계 조상이 제작한 그림을 발견했다”고 2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는 지금까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로 알려진 그림보다 1만6600년 앞서고, 멸종한 인류의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손도장보다 1100년 이상 더 오래된 것이다.
◇동굴 벽화 기록 계속 바꿔
최근 수십 년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는 인류 역사에서 핵심적인 장소로 떠올랐다. 이곳에서 동굴 벽화의 연대 기록이 계속 깨졌다. 오버트 교수 연구진은 2021년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술라웨시섬 레앙 테동게(Leang Tedongnge) 동굴에서 4만5500년 전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그림 속 멧돼지는 얼굴에 사마귀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섬 토종인 술라웨시 사마귀돼지로 추정됐다.
이 기록은 2024년 네이처 논문이 경신했다. 오버트 교수는 같은 지역 레앙 카람푸앙(Leang Karampuan) 동굴 벽화가 5만1200년 전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사람 3명과 멧돼지 1마리가 함께 있는 그림은 이번 손도장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이자 사냥도로 인정받았다.
인도네시아 무나섬의 동굴벽화이 연대 측정 결과. 나중에 그린 동물 그림 옆에 희미한 손도장(LMET1, LMET2)가 보인다(a). LMET는 연대가 6만7800년 전으로 확인됐다. 오른쪽은 그림 윤곽을 강조한 디지털 이미지(b)./네이처 |
연구진은 이번에 인도네시아 남동부 술라웨시 전역의 동굴을 조사해 총 44개 유적지를 찾았다. 그중 무나 섬 동굴의 그림은 우라늄 연대 측정법을 통해 제작 시기가 6만7800년 전으로 확인됐다.
동굴 벽화는 황토 같은 광물성 무기물 물감으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어서 유기물인 탄소를 기준으로 하는 탄소 연대 측정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피스대 연구진은 동굴 벽화 위에 물이 스미면서 생긴 탄산칼슘 퇴적물에서 우라늄을 추출했다. 우라늄이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선을 방출하고 토륨으로 변환되는 비율을 통해 연대를 측정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손도장은 스페인 북부에서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6만 6700년 전 것이었다. 이번 손도장은 그보다 1100년 더 오래됐다. 논문 공동 저자인 애덤 브럼(Adam Brumm) 그리피스대 교수는 “술라웨시 손도장은 스페인 네안데르탈인의 손도장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됐다”며 “벽에 손을 대고 황토 물감을 뿌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점은 술라웨시 손도장에는 한 손가락 끝이 인위적으로 좁아진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정하려면 물감을 더 발랐어야 한다. 아니면 동굴에 손을 대고 물감을 뿌릴 때 손을 움직여야 한다. 연구진은 “아마도 손을 발톱이 있는 동물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손자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창의적 상상력과 추상적 사고의 증거”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무나섬 동굴의 벽화들./호주 그리피스대 |
◇현생인류, 6만5000년 전 호주 도달 증거
연구진은 손가락을 좁게 표현하려고 수정한 점을 고려할 때 그림을 그린 사람은 네안데르탈인보다 호모 사피엔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호주 마제드베베(Madjedbebe) 유적지에서 나온 증거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가 최소 6만 년 전에 호주 대륙에 도착했다. 연구진은 술라웨시가 동남아시아에서 뉴기니를 거쳐 호주 대륙으로 가는 교두보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오래전 호주는 뉴기니섬과 태즈메이니아섬과 붙어 사훌(Sahul) 초대륙을 이루고 있었다. 그동안 학계는 인류의 직계 조상이 사훌 대륙까지 5만 년 전 도착했다고 주장하는 측과 최소 6만5000년 전 도착했다고 하는 측으로 갈려 논쟁을 벌였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호주인들의 조상이 6만5000년 전에 사훌에 있었다는 가설을 강력히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학계는 사훌 초대륙으로 오는 두 가지 주요 이동 경로를 제안했다. 술라웨시를 거쳐 뉴기니 지역으로 향하는 북부 경로, 그리고 티모르 또는 인접 섬들을 경유해 호주 본토로 직접 항해하는 남부 경로다. 논문 공동 저자인 호주 사우스크로스대의 르노 조안-보야(Renaud Joannes-Boyau) 교수는 “이번 발견이 아시아 본토에서 북부 경로를 통해 사훌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여정의 가장 유력한 경로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경로를 따라 유사한 고대 동굴 벽화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서호주대 인류학과의 마틴 포어(Martin Porr) 교수는 “이번 발견은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를 찾은 것”이라며 “손도장의 연대가 호주와 아시아 본토, 동남아시아에서 현생인류의 최초 출현 시기로 알려진 기존 연대와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인류가 호주로 이동한 경로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968-y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541-7
Science Advances(2021), DOI: https://doi.org/10.1126/sciadv.abd4648
이영완 기자(yw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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