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차 /조선일보DB |
구급대에서 전화가 왔다. 초등학생이 달리면서 놀다가 친구와 부딪쳤는데, 쓰러져 일어나지 않아 신고가 들어왔다. 눈이 돌아가면서 경기(驚氣)를 한 것 같다고도 했다. 구급대가 보기엔 자극에 반응이 없다고 했다. 빨리 응급실로 오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환자를 기다리면서 경우의 수를 헤아렸다. 초등학생이 갑자기 의식이 떨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의식 저하에도 약간의 자극을 주면 반응하는 기면 상태, 아주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혼미 상태, 어떤 자극에도 반응이 없는 혼수 상태 등 단계가 있다. 구급대 판단으로 환자는 혼수 상태였다. 맞다면 아주 나쁜 원인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일부러 응급실 앞에 나와서 기다렸다. 한시라도 빨리 상태를 판단하고 싶었다. 곧 구급차에서 초등학생이 내렸다. 외상의 흔적은 없었다. 환아의 가슴을 누르고 동공에 불을 비췄다. 불행히도 구급대의 판단은 정확했다. 정말 혼수 상태였다. 중환구역에 들어오자마자 CT실을 비워달라고 했다. 우선 뇌출혈을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끼리 아무리 세게 부딪쳐도 치명적인 뇌출혈이 생기기는 어렵다.
“뇌출혈입니다. 그런데 모양이 이상합니다.” 영상을 먼저 확인한 CT실에서 연락이 왔다. 환아는 호흡마저 불규칙해지고 있었다. 영상을 확인했다. 뇌출혈이 맞았지만 모양이 울퉁불퉁했다. 종양이 외력으로 파열되어 뇌출혈을 일으킨 경우였다. 뇌간에서 시작한 종양은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지금까지 어떤 증상도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생각할 수 있는 경우 중 가장 나쁘면서 드문 경우였다. 언젠가 발현될 증상이 우연한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환아에게 삽관을 하고 신경외과를 호출했다. 환아의 엄마가 곧 도착한다고 했다. 잠시 뒤 신경외과 교수님과 보호자가 동시에 도착했다. 교수님은 보호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했다. 뇌종양이고 위치가 나빠 수술할 방법이 없으며 앞으로도 의식을 되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보호자는 주저앉아 크게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업무와 관련된 말조차도 조심스러워졌다. 뇌압을 조절하자 환아는 약간 안정되어 보였다. 하지만 동공 반응은 여전히 없었다. 중환자실에 올라갈 무렵 처음으로 보호자가 환아를 면회했다. 보호자는 마치 의식이 남아 있는 것처럼 아이를 필사적으로 깨웠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보호자는 가까스로 내게 물었다.
“아이는 정말 멀쩡했어요.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미리 뇌종양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나요?”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일어난 이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미리 검진해서 찾아내기도 어렵습니다. 증상이 없었다면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저, 혹시. 친구랑 부딪쳐서 이렇게 되었다면서요. 그게 문제가 아닐까요?”
나는 보호자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제 말을 우선 기억하세요. 그 친구는 마지막으로 아이와 같이 웃으며 놀았던 친구입니다. 게다가 종양을 먼저 발견하게 해준 친구입니다. 부딪치지 않았다면 종양은 더 크게 자랐을 겁니다. 지금 발견된 게 그나마 최선입니다. 마음을 이해하지만, 오히려 소중하고 감사한 친구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건 절대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보호자는 고개를 숙였다. 환아는 보호자와 중환자실로 갔다. 응급실이 고요해졌다. 나는 침대가 떠난 빈자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불행을 겪는 사람은 원인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스로 벗어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누구라도 도와야 한다. 운명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 것뿐이다.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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