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정신 내세운 다보스포럼서
그린란드 병합 협박의 무대로 활용
마크롱 "불량배에 굴복 안해" 반발
독일도 '무역바주카포' 발동 예정
美 상무 "유럽 보복땐 맞대응"경고
제국주의적 야망에 국제사회 긴장
그린란드 병합 협박의 무대로 활용
마크롱 "불량배에 굴복 안해" 반발
독일도 '무역바주카포' 발동 예정
美 상무 "유럽 보복땐 맞대응"경고
제국주의적 야망에 국제사회 긴장
새해 글로벌 경제의 화두를 던지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에 온통 그린란드 관련 대화로 도배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을 ‘제국주의’ ‘불량배(bully)’에 비유하며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미국이 꼴찌인 시대는 끝났다”며 유럽이 그린란드 관련 보복 관세를 실행하면 맞불을 놓겠다고 경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미국이 관세를 영토 주권에 대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국제법이 무시되는 법치 없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다시 ‘제국주의적 야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불량배보다는 (상호) 존중을 선호한다”며 “우리는 잔혹 행위보다는 법치를 선호한다”고 강조했다.
바르트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도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이 너무 많은 ‘레드라인’을 넘어서고 있다”며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속 표현을 빌려 “괴물이 되고 싶은지 아닌지는 그(트럼프)가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전 덴마크 총리인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트럼프가 존중하는 건 힘과 강인함, 단결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며 “아첨할 때는 지났다.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유럽의 전략 변경을 촉구했다. 그린란드 정부는 주민들에게 닷새분의 식량을 비축하라는 권고 지침을 준비하는 등 미국의 군사력 사용 가능성에 대비하고 나섰다.
미국은 유럽의 이 같은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도발을 쏟아내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우리는 현상 유지를 위해 다보스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간다”며 “글로벌주의라는 환상에 기대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는 불안정을 초래하지만 미국은 과감하게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적었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서는 유럽이 보복 관세를 실제 단행할 경우 “맞대응(tit for tat·양측이 서로 상대 조치를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 국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위협했다. FT는 이날 저녁 열린 만찬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러트닉 장관을 향해 야유를 쏟아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유럽은 지난해 7월 미국의 상호, 자동차 등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미국에 600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하고 7500억 달러어치의 에너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굴욕 합의’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유럽 측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전히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현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나토 회원국의 영토까지 넘보자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프랑스에 이어 독일도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유럽연합(EU) 긴급 정상회의에서 EU집행위원회에 ‘무역 바주카포’라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을 요청할 것이라고 5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자동차 관세를 올릴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독일이지만 약한 모습을 보일수록 미국에 끌려다닐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시장, 공공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발동을 위해서는 EU 이사회 소속국 중 최소 15곳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한 EU 외교관은 “우리가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폭넓은 지지가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스네이션 인터뷰에서 유럽의 ACI 움직임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든 나는 맞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린란드를 두고 미국과 유럽이 충돌하면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당초 다보스포럼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과 안보 보장·번영 계획안에 서명 준비가 됐을 때만 다보스로 이동할 것”이라며 사실상 불참을 선언했다. 대신 스티브 윗코프 트럼프 대통령 특사,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와만 만났으며 회동 후 양측은 대화가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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