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법 전운 고조…한발 앞서간 재판부에 기업들 혼란
노봉법 시행 전인데 법원 기조 급변
“공항, 면세점 판매자에 실질적 지배력 있어” 판결에 노조 환영
산업별 하청 노조들 파업 준비…기업은 아직 속수무책
“사용자성 인정하면 불법파견도 인정?” 재계 패닉
노봉법 시행 전인데 법원 기조 급변
“공항, 면세점 판매자에 실질적 지배력 있어” 판결에 노조 환영
산업별 하청 노조들 파업 준비…기업은 아직 속수무책
“사용자성 인정하면 불법파견도 인정?” 재계 패닉
[챗GPT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 |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사실상 법원에선 이미 노란봉투법 시행 중입니다.”
노동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 연말 노동조합법상 ‘실질적 지배력’ 개념에 대해 법원이 연이어 내린 판결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노란봉투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 3월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 등 정비에 한창이다. 다시 말해 노란봉투법은 아직 효력이 없다. 그런데 “이미 개정안 취지를 반영해 실질적 지배력 개념을 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현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노동계와 기업의 대응도 법원 판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노란봉투법 핵심 골자는 대기업이 직접 고용한 근로자가 아닌, 하청 혹은 협력 회사라도 단체교섭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국내 모든 기업들의 단체교섭 틀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전면적인 변화다. 지난해 8월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이후, 현장에서 나타난 주요한 신호들을 짚어봤다.
① 법원은 이미 노봉법 시행 중?
서울 시내 한 면세점. [연합] |
노란봉투법이 불러올 가장 큰 논쟁은 과연 원청의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지다. 노란봉투법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대상을 ‘하청’ 등으로 명시한 게 아니라,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 아래에 있는 근로자로 정하고 있다. 회사의 사업 구조나 노동 형태 등에 따라 원청교섭 대상인지 아닌지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미 법원은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는 기조를 이미 완전히 바꿨다. 백화점 및 면세점 입점 업체 판매직의 단체교섭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면세점에 입점한 판매직 노조가 JDC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JDC와 판매직 노조 간 다툼은 2023년부터 시작됐다. ▷판매직 노조는 2023년 1~8월 5차례에 걸쳐 연장영업을 제한하고 명절 휴식 등을 보장하는 내용의 단체교섭을 JDC에 요구했다. ▷JDC가 이에 응하지 않자 노조는 2024년 3월 제주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했으나 “실질적 지배력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런데 1년 만인 지난 11월 법원이 정반대 판결을 내린 것이다. 법원은 “근로계약이 없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라며 판매노조의 교섭 요구를 인정했다.
“교대제, 시차제 근무의 적용 여부, 근무조 편성, 조별·개인별 실제 시·종업시간을 입점업체가 정함으로써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 다면적 노무제공관계의 특성상 그와 별개로 참가인(JDC)이 입점업체와 별도로 행사하는 실질적 지배력도 인정될 수 있다.”
-JDC 대상 면세점 판매직의 단체교섭 권리를 인정한 서울행정법원 판결문 일부
예를 들어 노조가 요구한 의제 중 하나인 ‘휴식권’에 대해 JDC 측은 판매직들의 근무조 편성이나 개인별 근무시간은 입점업체가 정하므로 본인들은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역시 “면세점의 영업시간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며 면세점과 입점업체가 모두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면세점이 직접적으로 판매직의 근무 시간을 정하는 건 아니지만, 면세점 영업시간이 큰 틀에서 영향을 미치므로 지배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시행 전에 나온 이 판결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키웠다고 본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 판결에 대해 “구체적인 교섭 절차는 시행령으로 정해나가야 하는 부분인데 그 절차는 현재 빈칸이라 기업으로선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현행법만으로 지배력 인정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노란봉투법도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법원이 먼저 판결을 내리고, 이를 국회가 받아서 입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구자형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에도 절차에 대해선 오랜 합의가 필요한데 기업이 이 준비단계 없이 교섭 의무만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② 파업 준비 돌입…목소리 키우는 대기업 하청노조
지난달 27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불법파견·교섭거부’ 현대제철 비정규직 집단 고소 기자회견. [연합] |
면세점 판매직의 단체협약 권리를 인정한 판결은 노동계에 긍정적인 신호가 됐다.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노동계는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이하 한화오션 하청 노조)는 현재 쟁의 찬반 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미 지난 13일 투표를 실시해 찬성률 80%를 기록했다.
양사 하청노조는 지난 2022년부터 원청과 교섭을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2022년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이 단체교섭에 응하되, 법적 효력을 갖는 협약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정했다.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도 이 결정을 뒷받침했다. 다만 양사가 아직 하청노조 교섭에 응하지 않아, 노조도 파업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재계에선 한화오션과 현대제철 하청노조 사례를 따라,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하청 파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면세점 노조 판결처럼, 원청과 하청 영향 관계가 간접적이더라도 앞으로는 지배력이 인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내 한 조선사 하청 업체 근로자들이 작업 전 위험 요소를 점검하는 모습. [헤럴드경제 DB] |
반드시 원·하청 관계가 아니더라도,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들 사이의 법적 다툼도 늘어날 전망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항만하역 회사 근로자들로 구성된 지역단위노조가 항만하역협회 산하 지방협회와 소속 회사들에 요구한 단체교섭 요구를 기각했다. 해당 회사들과 노조 간에 근로계약은 물론 아무런 근로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위 사례에선 단체교섭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재계에선 앞으로 이같은 조정 신청이 빗발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항만하역협회 사례를 보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협력사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제조업 중견기업 등도 노란봉투법에 따른 ‘사용자’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중견기업 한 관계자는 “법원에서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기 전까지는 기업들도 소용 비용 부담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③ “불법파견 회사 되나” 아직 속수무책 기업들
노란봉투법 해석지침 핵심 정리 |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그게 불법파견인가요?”
대기업의 한 노무 담당자는 최근 한 법무법인과의 세미나에서 이렇게 물었다. 재계는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다. 어떤 회사나 조직이 어떤 내용의 단체교섭을 요구할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법무법인 등에 개별 세미나 혹은 컨설팅을 요구하는 것이 전부다.
기업들 사이에선 특히 ‘불법파견’ 범위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많다고 한다. 법적으로 불법파견이란 도급이나 용역 계약을 맺고, 실제로는 사용자의 지배력 아래 종속적으로 일하는 것을 이른다. 즉,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는 것이 곧 불법파견 인정으로 직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고용노동부가 노란봉투법 지침에 ‘노동안전 교섭에 응하고 합의를 이행했다고 해서 불법파견 징표는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았지만, 법원 판단이 반드시 정부 지침을 따르는 건 아니다.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시행 방안 이전에 아직까지 실질적 지배력에 대한 정의나, 어디와 교섭을 해야하는지 같은 기본적인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