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왼쪽)가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해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1심에서 징역 23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역대 국무총리 중 처음으로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21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이같이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해 11월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구형한 징역 15년보다 8년이나 높은 형량이다.
이날 재판부는 비상계엄을 윤 전 대통령과 측근들에 의한 친위 쿠데타이자 집권 세력이 장기 집권을 도모한 ‘위로부터의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또 한 전 총리는 이에 동의하고 지지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미 정권을 가지고 있는 권력이 더 큰 지위를 얻거나 요구하기 위해 스스로 쿠테타를 일으켜 죄질이 나쁘다고 봤다. 이는 형량이 높아진 배경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내란 행위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내란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계엄 포고령에 “국헌 문란 목적”, 군경 국회·선관위 통제엔 “폭동”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 재판은 12·3 비상계엄이 내란에 해당하는지 사법부가 처음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형법 87조는 내란을 ‘대한민국 영토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이 내란죄로 인정하려면 ‘국헌 문란’이라는 목적이 있었고, ‘폭동’도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윤 전 대통령 측은 12·3 비상계엄은 내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근거해 위헌·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하고 군 병력 및 경찰 공무원을 동원해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점거, 출입 통제하는 등의 행위는 형법 87조에서 정한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부가 발령한 포고령에 대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의회·정당 제도, 영장주의를 소멸시키고 헌법에 의해 금지되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검열을 시행해 헌법과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려는 목적, 즉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발령한 것”이라고 봤다.
또 군 병력과 경찰력이 국회와 중앙선관위를 점거하거나 출입을 통제한 데 대해서는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을 일으켰다고 인정된다”고 했다.
이후 재판부는 선고 내내 12·3 비상계엄 사태를 ‘12·3 내란’이라고 표현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서울 여의도 국회가 봉쇄된 채 국회 본관 앞에서 국회에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정당 관계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조선DB |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 발생… 기존 내란과 비교 안 돼”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의 성격을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이 점은 한 전 총리에게 특검 구형보다 더 높은 형량이 선고되는 이유가 됐다.
재판부는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면 친위 쿠데타는 많은 경우 성공해 권력자는 독재자가 됐다”며 “국가와 사회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진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며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해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심정 자체를 뿌리째 흔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현재 한국 사회에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논의되는 저항권을 평상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 ▲계몽적 계엄, 잠정적 계엄, 경고성 계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과 같이 정치적 입장을 위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선거 제도를 정당한 근거 없이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2·3 내란은 이 같은 잘못된 주장이나 생각을 양산하거나 상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또 과거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던 시기와 비교해 현재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런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사실로 생긴 경제적·정치적 충격은 기존 내란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재판부는 기존 대법원 판결은 아래로부터의 내란을 다룬 것이어서, 위로부터의 내란인 이번 사건에 기준으로 삼을 수 없으며,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도 내란 가담자 처벌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전 총리와 윤 전 대통령 측은 12·3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종료됐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는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라면서 한 전 총리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가 봉쇄된 채 국회 정문 앞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DB |
◇“한덕수, 12·3 내란 성공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담 선택… 진지하게 반성 안 해”
내란 특검은 당초 한 전 총리에게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적용했으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도 판단해달라며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허용했다.
재판부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한 전 총리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가 국무위원 심의를 거친 것 같은 외관을 형성한 행위, 계엄 선포 후 국무위원들에게 관련 문서에 서명을 받으려 한 행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주요 기관 봉쇄·언론사 단전 단수 지시 이행 방안을 논의한 행위 등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비상계엄 해제 뒤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작성한 사후 선포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서명한 뒤 이를 폐기한 허위공문서 작성,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작년 2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나와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발언해 위증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비상계엄 선포 후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국회 상황을 확인하고 국회 통고 여부를 점검한 행위, 계엄 해제 후 이에 대한 국무회의 심의를 지연시킨 행위는 무죄로 판단했다. 허위 공문서인 ‘사후 계엄 선포문’을 행사한 혐의도 무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당시 ‘국정 2인자’였으므로, 지위와 책임을 고려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12·3 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일원으로서 가담하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거나 자신의 범죄 행위로 국가와 국민이 입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을 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했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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