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20년 1월 21일 84세
2020년 1월 21일 84세
사진=연합제공 백남봉(오른쪽)과 함께 방북하는 남보원 |
코미디언 남보원(본명 김덕용·1936~2020)은 1985년 9월 21일 남측 예술 공연단 일원으로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분단 후 처음으로 고향 방문단 50명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도착했다. 훗날 남보원은 “무대에서 아무리 재담을 늘어놓고 몸을 꼬아도 북한 주민들은 부동자세로 굳어 있었다”며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배꼽 빠지게 웃었을 것”(2003년 9월 22일 자 24면)이라고 회고했다.
남보원은 고향이 평안남도 순천으로 자신도 이산가족이었다. 이때는 북의 형제와 만나지 못했다. 15년 후 다시 기회가 왔다. 2000년 8월 MBC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함께 다시 평양을 찾았다. 이번엔 베이징에서 비행기 편으로 들어가 누나 김덕화(당시 71세)씨와 상봉했다.
남보원 인터뷰. 2010년 9월 4일자 B6면. |
남보원은 서울에 돌아와 “50년 세월이 지났지만 한눈에 15살 때 헤어진 누나를 알아볼 수 있었다”며 “뼈만 앙상하게 남은 데다가 허리까지 굽은 모습을 30여분간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흘렀다”(2000년 8월 14일 자 27면)고 말했다.
전쟁 경험과 실향민 정체성은 남보원 코미디의 원천이었다. 탱크 소리, 전투기 소리, 따발총 소리, 항구를 떠나는 뱃고동 소리 성대모사에는 전쟁 체험이 녹아 있었다. “태산이 높으믄 얼마나 높겠습지비”(함경도 사투리)로 시작하는 ‘팔도 사투리 시조 편’은 실향민의 향수를 자극했다. 혼자 무대에 나와 역대 대통령 목소리를 흉내 내고 유행가를 모창하면서 웃고 울리는 남보원 코미디는 원조 ‘원맨쇼’였다.
조영남이 본 남보원. 2002년 4월 9일자 44면. |
라이벌이자 동료 코미디언 백남봉과 콤비로도 활동했다. 남보원은 2000년 7월 29일 별세한 백남봉 빈소에서 “같이 무대에 서면 ‘내가 뱃고동 울릴 테니 너는 갈매기 소리 내라’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해 조화를 이뤘는데 이렇게 갑자기 먼저 가니 한쪽 날개를 잃은 듯 허망하다”(2010년 7월 30일 자 A27면)고 말했다.
남보원은 백남봉 장례식에서 ‘한오백년’을 불렀다.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백남봉, 정만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장례식에서 노래가 화제가 되면서 가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의 ‘코미디 철학’을 말했다.
“말만 하거나, 노래만 하거나, 성대모사만 하는 식으로 한 가지만 하면 몇 분 못 끌고 가요. 원맨쇼는 이 모든 걸 섞어야 해요. 웃다가 울다가 노래하다 소리 지르다가 그렇게 되는 거죠.”(중략) “공연비는 한 푼도 안 받으면 안 받지, 깎지는 않는다. 어디 가서 ‘나 써 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2010년 9월 4일 자 B6면)
우정사업본부가 25일 한국 코미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 구봉서, 남보원을 기념하는 기념 64만장을 발행한다. |
예명 남보원은 어떤 일을 하든지 ‘넘버 원’이 되라는 아버지 말씀에 따라 지었다. 2022년 10월 남보원 얼굴을 담은 우표가 나왔다. 선배 코미디언 구봉서와 함께였다. 우정사업본부는 “국내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한국의 희극인’ 구봉서와 남보원을 기념하는 우표 64만장을 25일 발행한다”(2022년 10월 25일자 A25면)고 밝혔다. 희극인으로 우표 모델이 된 ‘넘버 원’이었다.
[이한수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