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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친 짓… 우리 땅을 빼앗을 순 없다”

조선일보 누크(그린란드)·코펜하겐(덴마크)=원선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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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친 짓… 우리 땅을 빼앗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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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월 1일 유럽 8개국에 예고한 관세 부과 않겠다"
[‘갈등의 땅’ 그린란드 원선우 특파원 르포]
대서양 동맹 균열의 최전선으로
항공기 만석, 운항 횟수도 늘려
21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공항에서 그린란드 자치령 깃발을 든 그린란드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다./원선우 특파원

21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공항에서 그린란드 자치령 깃발을 든 그린란드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다./원선우 특파원


20일(현지 시각)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 공항.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에어그린란드 GL781편을 타고 5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이곳은 전쟁이라도 앞둔 듯 긴박한 분위기였다. 공항 곳곳에서 사람들이 TV와 휴대전화 화면으로 덴마크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전투 병력이 무장한 채 그린란드 땅을 밟는 모습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비판하는 유럽 정상들의 목소리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덴마크 국기가 달린 제복을 입은 10여명은 비행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이들은 “민간차원 임무 수행을 위해 가는 소방관”이라고 했다. “그린란드에 가는 게 지금 갈등 상황과 관련이 있냐”고 묻자 이들은 “그건 대답 안하는게 지혜로울 것 같다”며 눈길을 피했다. 함께 비행기를 탄 이누이트족(그린란드 원주민) 청소년은 “주변 어른들이 ‘트럼프가 미친 짓을 한다’며 모두 충격받았다”고 했다. “트럼프가 정말 그린란드를 병합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는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 땅을 빼앗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그린란드는 그동안 유럽의 최후방이자 빙하로 뒤덮인 ‘오지’ 취급을 받아왔다. 그랬던 이 얼음섬이 ‘트럼프발(發) 폭탄’에 대서양 동맹 균열의 최전선으로 부각돼 달아오르고 있다. 이날 그린란드행 비행기는 만석(滿席)이었는데, 항공사 직원은 “예전엔 이렇게 꽉 찬 적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코펜하겐에서 그린란드로 가는 항공편은 그간 에어그린란드가 주 4회 운항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트럼프가 지난해 초 ‘그린란드 매입’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뒤 수요가 늘어 여름부터 스칸디나비아항공도 주 3회 운항을 시작했다. 최근엔 두 항공사가 취항 횟수를 1~2회 더 늘렸다고 한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관계자, 유럽의 안보 당국자, 언론사 취재진 등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뜨거운 그린란드’… 여객기 연일 꽉 차. 2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린란드 수도 누크로 향하는 여객기 탑승구가 가방에 국기를 부착한 소방관 등 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덴마크와 미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안보 당국자와 취재진 등 그린란드행 승객도 최근 크게 늘었다./코펜하겐=원선우 특파원

‘뜨거운 그린란드’… 여객기 연일 꽉 차. 2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린란드 수도 누크로 향하는 여객기 탑승구가 가방에 국기를 부착한 소방관 등 승객들로 붐비고 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덴마크와 미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안보 당국자와 취재진 등 그린란드행 승객도 최근 크게 늘었다./코펜하겐=원선우 특파원


비행기 탑승에 앞서 둘러본 덴마크 본토도 긴장감이 돌긴 마찬가지였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만난 한 시민은 “평생 뉴스에서 덴마크 군인이 저렇게 많이 나온 걸 본 기억이 없다”며 “미국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정말 걱정된다”고 했다. 택시기사 라르스 옌센(57)씨는 “그린란드를 가져가겠다는 트럼프의 말이 이젠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며 “미국은 ‘수페르마그트(Supermagt·초강대국)’이고 우리는 ‘작은 물고기’인데 뭘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공항에서 만난 소피에 엘센(22)씨도 “상황이 정말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주변에선 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빼앗아갈 거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 것 같다”고 했다.

◇덴마크 시민 “우리가 알래스카 돈으로 산다면 美는 가만 있겠나”

트럼프 미 행정부의 그린란드 야욕이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자 덴마크 정부도 점차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날 페터 보이센 덴마크 육참총장은 직접 58명의 전투 병력을 이끌고 그린란드 누크에서 북쪽으로 약 300㎞ 떨어진 칸게를루수악에 도착했다. 이들은 앞서 파견된 약 60명의 병력과 합류해 현재 그린란드에서 진행 중인 다국적 군사 훈련 ‘북극 인내 작전’에 참여할 예정이다. 미국이 이 훈련에 병력을 보낸 유럽 8개국에 ‘관세 폭탄’을 예고하자 덴마크도 추가 파병 맞불을 놓은 것이다. 덴마크 정부는 해당 작전에 대해 “방어적 훈련”이라고 설명하지만, 현지에서는 사실상 그린란드 방위 태세 강화를 공식화한 조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덴마크 TV2의 국방 전문 기자 안데르스 룸홀트는 “이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조치”라며 “이제 실제 전투 병력이 투입되며, 향후 며칠 동안 실질적인 전투 훈련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보이센 육참총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이고 고강도 임무에 대비한 최고 수준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린란드를 방어하는 훈련, 특히 격렬한 대립 상황을 염두에 둔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상 미국을 ‘침공국’으로 가정한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보이센은 ‘적대적인 미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건 내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질문으로, 추측에 불과하다”면서도 “우리는 작전 규정에 따라 스스로를 방어할 의무와 권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캐나다의 공동 군사 조직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도 19일 그린란드로 군용기를 보내며 긴장감이 더해졌다. NORAD는 이날 성명을 통해 “오랫동안 계획된 활동”이라며 이번 조치가 덴마크와 사전 조율됐고 그린란드에도 통보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활동 내용과 파견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트뢸스 룬 포울센 덴마크 국방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를 찾아 그린란드에서 나토 차원의 ‘감시 작전’을 시작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포울센은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 후 “사무총장이 제안에 주의를 기울였다”며 “이를 구체화할 틀을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께 논의에 참여한 비비안 모츠펠트 그린란드 외무장관도 “그린란드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례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며 “북극에서 국방·안보 협력을 나토 틀 안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트럼프의 ‘그린란드 관세’ 부과 계획을 “실수”라고 하며 “(트럼프의 위협에) 유럽은 단호하고 단결되고 비례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덴마크 정부는 “우리 힘으로도 충분히 그린란드를 지켜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군과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내며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야코브 엥겔슈미트 덴마크 문화부 장관은 TV 토론에 출연, “이젠 미국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코펜하겐 거리에서 만난 한 70대 시민은 “미국은 우리를 모욕하고 있다”며 “누가 (미국 땅인) 알래스카를 돈으로 산다고 한다면 미국인들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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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그린란드)·코펜하겐(덴마크)=원선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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