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
노조끼리 ‘갈등 있다’ 주장하면
원청은 각각의 노조와 별도 교섭
노조끼리 ‘갈등 있다’ 주장하면
원청은 각각의 노조와 별도 교섭
작년 7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7·19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3월 10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수천 개 하청 노조가 각각 원청과 교섭을 진행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발표하며 이 같은 우려가 나오자 경영계 의견을 수렴한다고 했는데, 정작 노동계 입장을 더 반영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일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을 2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재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입법예고된 시행령에서 일부 조문을 고친 것이다. 재입법예고하는 노란봉투법 시행령의 핵심은 원·하청 간 교섭 창구 분리 등을 판단할 때, ‘이해관계 공통성, 이익 대표의 적절성, 노조 간 갈등 가능성’을 우선 고려 사항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A 하청업체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B 하청업체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라 갈등이 있다면 원청과 각각 분리 교섭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등이 교섭 분리 여부를 판단하는 우선 고려 사항이 되면서, 하청 분리 교섭이 더 쉬워졌다는 평가다. 그동안 노동계에선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면 사측이 어용 노조를 만들어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뺏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노조 간 갈등 가능성’처럼 주관적인 기준을 우선 고려하라고 명문화함에 따라, 노조가 이를 근거로 내세우면 분리 교섭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가 무력화되고 교섭 창구가 수백 개 이상으로 쪼개져 기업의 교섭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맞물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최근 하청 노조에 원청을 대상으로 직접 교섭을 요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행령 확정 전부터 원청 상대 교섭을 제기해 사용자성 판단, 교섭 방식 등과 관련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14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민노총 신년 결의 대회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이 ‘진짜 사장 나와라’ ‘원청 교섭 쟁취하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
◇금속노조, 산하 지부에 “원청에 직접 교섭 요구하라”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공문에서 “하청 노조와 원청의 교섭은 창구 단일화 절차가 규제할 영역이 아니다”라며 “(노란봉투법) 시행령이 확정되기 전인 1월부터 원청 교섭을 제기해 다양한 이슈화 사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이 공문에는 “원청에 교섭 요구를 한 뒤 사용자가 교섭 요구 사실 공고를 하는지, 내용에 누락이 있는지 보고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제도가 확정되기 전부터 원청과의 교섭에 나서 사용자성을 주장하고, 이 과정에서 원청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등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
실제 이날 원청 대기업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고 보기 어려운 하청 업체 노조 40여 곳이 현대차 측에 공문을 보내 교섭을 요구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들 하청업체 노조의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는 이날 40여 개 사내 하청 업체를 거론하며 “(현대차가) 이들의 노동 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한다”며 “단체 교섭을 요구하니 성실히 임해 달라”고 했다. 현대차 측은 해당 업체의 노동 조건에 대해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사용자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용자 여부가 불분명한 업체의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때,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 노동 행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라고 했다.
현재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경영계와 노동계의 가장 큰 입장 차는 노사 교섭 방식이 창구 단일화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교섭 단위 분리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지다. 민노총 공문은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무력화하고, 분리 교섭을 하는 게 노란봉투법의 진짜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부의 두 차례 입법예고는 이 같은 노동계 의견을 적극 반영해 작성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존엔 복수 노조가 허용되면서 도입된 교섭 창구 단일화가 대원칙이었고, 교섭 단위 분리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 등’의 경우에만 예외로 인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시행령 입법예고에선 앞선 3가지 경우에 더해 ‘이해관계 공통성, 이익 대표의 적절성,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등이 교섭 단위 분리의 새 기준으로 추가됐고, 이번 재입법예고에선 이를 우선 고려 요소가 되게 만든 것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행령은 법률이 위임한 범위 안에서 집행 기준 등을 구체화하는 것인데, 노동부는 이를 넘어 교섭 결정 제도 관련 핵심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는 월권 행위를 한 것”이라고 했다. 또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은 교섭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 대표 노조가 결정된 이후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교섭 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가 또다시 분리 교섭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가 무력화된다는 우려에 대해 시행령에서 전혀 보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시행령 입법 예고 이후 교섭 단위 분리·통합 기준이 원청 복수 노조 간에도 적용돼 원청 노조가 분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됐다”며 “이 같은 경영계 우려를 받아들여 원청 노조 사이에서 교섭 단위 분리는 영향이 없고, 원·하청 간에 적용됨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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