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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믿는다고 덥석 따라 믿는 세상… 난 순종적 양떼를 거부한다”

조선일보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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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믿는다고 덥석 따라 믿는 세상… 난 순종적 양떼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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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월 1일 유럽 8개국에 예고한 관세 부과 않겠다"
“평등에 미친 시대”에 돌직구
美 소설가 라이오넬 슈라이버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이 책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주인공 피어슨과 그의 절친 에머리는 ‘정신평등주의’에 대한 이념차로 갈라선다. 작가는 “오랜 우정의 파괴는 진영 논리를 초월한 비극”이라고 했다./게티이미지코리아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이 책은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주인공 피어슨과 그의 절친 에머리는 ‘정신평등주의’에 대한 이념차로 갈라선다. 작가는 “오랜 우정의 파괴는 진영 논리를 초월한 비극”이라고 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이 소설은 단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2012년 무렵부터 별다른 예고 없이 문화 전반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사회적 광기에서 출발했다. 불과 5분 전까지 믿지 않았던 것을 단지 남들이 다 믿는다는 이유로 덥석 믿는 인간의 약점을 파헤치고 싶었다.”

미국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69)는 거침없었다. 에두르지 않고 직구를 던졌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광기란 “트랜스젠더 담론에 대한 과한 집착(fetish), ‘미투(성폭력 고발)’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팬데믹 봉쇄, 기후 변화에 대한 강박 등”이다.

‘문화 전쟁 중독자(culture war addict)’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원작자로 유명한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마니아’(자음과모음)를 썼다. 이 책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질문지를 보냈다. 포르투갈 리스본 외곽에 사는 그가 답을 보내왔다.


2010년대 초중반을 주 무대로 삼아 ‘정신평등주의’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그렸다. 부제는 ‘평등에 미친 시대’다. 이 디스토피아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똑똑하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는 차별주의자 또는 혐오 세력으로 몰려 공격받는다. ‘바보’는 물론 ‘똑똑하다’는 칭찬도 금물. 지성에 우열이 없어야 해서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는 금서(禁書)가 되고, 영화 ‘덤 앤 더머’는 상영 금지 처분을 받는다. 바보 캐릭터들은 자취를 감춘다. 만화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이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뚱이는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다. 볼테르시(市) 볼테르대 시간 강사인 피어슨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분노가 끓는다. 작가의 분신 같은 인물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의 이름을 지명에 쓴 것은 의도된 아이러니다.

이 모든 설정은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주의와 반지성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꼼이다. 슈라이버는 “무색무취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좌파의 맹신을 정조준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믿음은 글과 말에 산만한 이념적 짐을 지운다”며 “우리의 정밀한 사고와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어색하고 투박한 표현을 쓰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 시대는 섬세한 감수성에 맞지 않는다며 갑자기 수많은 예술 작품을 악마화하기도 한다”며 “일부 도서관에서는 N으로 시작하는 단어(흑인 비하 표현인 ‘nigger’를 의미)를 썼다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앵무새 죽이기’ 소장을 거부한다. 기가 찰 노릇”이라고 한탄했다.

‘좌파 저격수’ 같지만, 진영 논리에 갇힌 채 그를 해석하려면 스텝이 꼬인다. 미국과 영국에서 2024년 4월 출간된 이 책이 그리는 평행 우주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대승을 거두고, 2020년 재선에 성공한 것으로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트럼프 재선(2024년 11월)을 나름대로 예측한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왜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 같은 책 읽은 것 맞냐”고 되받아치며 이렇게 답했다. “정신평등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무례하고, 상스럽고, 멍청한 이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좌우 양 진영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반골이었다.


대표작 ‘케빈에 대하여’에서 ‘모성애 신화’를 깨부순 전력이 있는 그는 “시대가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을 의심하는 소설을 쓴다”고 했다. 쓰는 힘은 “신문”에서 온다고 했다. “현실은 내가 지어낼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기상천외하고, 솔직히 말해서 더 믿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끝까지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당신이 주인공 피어슨처럼 대세를 따르지 못하고, 주제넘은 온갖 시비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절망하지 마라!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다수가 아니지만 만나면 서로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술집이나 디너 파티에서 정신없이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순종적인 양떼들과 달리.”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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