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 농악 아우른 춤 공연 김운태傳
23~27일 돈화문국악당서 연장 공연
23~27일 돈화문국악당서 연장 공연
몸은 하늘로 치솟고 손은 소고를 치는데 머리 위엔 채상(흰 띠)이 춤춘다. 서울 돈화문국악당 '김운태전(傳)' 공연 중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구기훈 사진가, PRM |
자진모리 장단에 상모가 돌았다. 장단이 더 빨라지자 훌쩍 몸을 솟구치며 벅구(소고)를 치는 ‘솟음벅구’가 이어졌다. 빠른 휘몰이 장단에 몸을 45도로 기울여 원을 그리듯 점프하며 회전하는 ‘자반뒤집기’가 나오자 객석의 박수는 환호성과 뒤섞였다. 이어 발끝을 떼고 공중에서 도는 ‘두루걸이’가 삼단뛰기로 이어지자 탄성이 터졌다. ‘머리에서는 채상(길고 흰 띠)이 놀고, 손에서는 소고가 놀고, 발에서는 장단이 논다’는 말을 듣는 김운태(63) 명인의 ‘채상소고춤’(상모 위 흰 띠를 돌리며 추는 춤)이다.
김운태는 지난 주말에 이어 23~27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돈화문국악당에서 ‘김운태전(傳)’ 무대에 오른다. 앵콜 공연까지 이틀이 연장된 이번 공연엔 우리 장단과 춤에 바친 그의 한 생이 오롯이 담겼다. 공연장 입구에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그가 여전히 즐겨 타는 할리 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이 서 있다.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린 채상소고춤 명인 '김운태전(傳)' 중 김운태의 비나리. /구기훈 사진가, PRM |
무대 위 바람 같은 시간이었다. 수십 개 여성 농악단이 전국을 돌며 고단한 민초들 삶을 위로하던 시절, 그는 여섯 살 때부터 부친이 만든 ‘호남여성농악단’ 무대에 서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관객들은 앞다퉈 신동의 허리띠에 촘촘히 지폐를 꽂았고, 10원 지폐로 접은 종이비행기들이 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중학교 때는 리틀엔젤스예술단 단원으로 영국 공연을 준비하다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탓에 비자가 불허되는 좌절도 겪었다. 그의 큰누나는 한국 최초의 여성 프로레슬링 동양 챔피언. 공연 천막 앞에서 경비를 서다 동네 건달들과 시비라도 붙으면 늘씬 두들겨 패주곤 경찰서에 끌려가기 일쑤였다.
김운태는 1976년 전주대사습놀이 농악부 장원을 차지한 데 이어 열아홉 살에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입단해 우리 사물놀이 첫 세대로 활약했다. 1999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2012년 여수엑스포 전통마당 예술감독도 맡았다. 그의 채상소고춤은 영호남과 충청의 전통을 모두 아울러 ‘김운태류’로 명명된 독보적 경지다. 갈고 닦은 춤사위 뿐 아니라 무게 배분까지 고려한 한지와 구슬 등 채상의 재료까지 오랜 연구와 실험의 결과다.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린 채상소고춤 명인 '김운태전(傳)' 공연 중 그가 여성농악단의 맥을 이어 조직한 '연희단 팔산대'의 판굿./PRM |
여성농악단의 맥을 이어 그가 꾸린 여성 전통 연희 공연단 ‘연희단 팔산대’가 함께 공연한다. 비나리 판굿과 북춤, 장구춤이 채상소고춤 피날레까지 어우러진다. 김운태의 삶과 춤 이야기를 국악계 최고 입담으로 이름난 진옥섭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의 맛깔나는 해설로 듣는 재미도 놓치기 아쉽다. 그는 김운태에 대해 “이제 눈썹도 무거울 나이”라고도 했다. 2013년 9월 이탈리아 피렌체의 민속음악 축제에 초청돼 공연할 땐 “세상 유일무이한 팀”이라는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았던, 연희단 팔산대와 김운태의 공연을 만날 드문 기회다. 전석 3만원.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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