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저성장 원인 진단’ 보고서
기업 커질수록 규제 강도 높아져
기업 커질수록 규제 강도 높아져
서울 중구의 대한상공회의소 모습. /대한상공회의소 |
한국 기업들이 외형 성장에 따른 규제와 비용 폭탄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는 현상,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 고착화되면서, 사라지는 경제적 가치가 매년 111조원에 달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0일 ‘한국 경제의 저성장 원인 진단과 기업 생태계 혁신 방안’ 보고서에서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로 인한 손실이 GDP의 4.8%(약 111조원)로 최근 3년치 경제 성장분(약 103조원)을 웃도는 규모”라고 밝혔다. ‘50인 이상 기업에 대한 규제가 기업들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걸 증명한 스페인 경제학자 가리카노(Garicano) 교수의 모델을 한국에 대입해보니, 우리 기업들도 겹겹의 규제 장벽 앞에서 성장을 멈추는 안주 전략을 택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10~49인 소기업이 5년 뒤에도 같은 규모에 머무는 비율은 1990년대 40%대에서 최근 60%로 치솟았다. 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될 확률은 1990~2000년대 3~4%대에서 2%대로 주저앉았고, 대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은 0.05%도 안 된다. 소기업 2000곳 중 1곳 정도가 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멸종 단계라는 뜻이다.
규모별 규제는 기업 생태계를 영세 기업 중심으로 고착화시켰다. 한국 제조업 내 소기업(10~49인) 고용 비중은 42.2%로, OECD 평균(22.7%)의 두 배에 달한다. 반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기업(250인 이상) 고용 비중은 28.1%로 OECD 평균(47.6%)의 절반 수준이다. 국내 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0.4%에 불과한데, 그곳에 인력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 있는 셈이다.
경제의 ‘자원 배분 기능’도 고장 났다. 2014년 이전에는 노동력이 생산성 높은 산업으로 이동하며 경제 생산성을 1.3%포인트 올리는 데 기여했지만, 그 이후에는 생산성이 오히려 감소(-0.1%포인트)했다는 것이다. 생산성 높은 산업의 성장이 막히자, 생산성 낮은 곳으로 인력이 몰리는 비효율이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잘 크는 기업이 더 잘 크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번 연구를 한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제와 조세 제도의 과감한 재설계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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