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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값 아껴 고급 레스토랑 간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게 SNS 콘텐츠

동아일보 김유경 푸드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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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값 아껴 고급 레스토랑 간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게 SNS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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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NOW]

고물가에 평소 절약하는 소비자들… “이건 꼭 해 봐야” 심리에 큰돈 써

‘극단소비’와 구별되는 ‘스플릿 소비’

SNS 올리는 음식, 술로 자신을 표현… 맛보다 이야기에 주목하는 경향 읽어야
고급 레스토랑, 호텔 바 등을 찾는 소비 패턴이 확대되고 있다.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경험을 콘텐츠화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게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손종원 셰프(왼쪽 사진)가 서울 강남구 조선 팰리스 내 이타닉 가든에서 방문객들에게 메뉴(오른쪽 사진)를 설명하며 미식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

고급 레스토랑, 호텔 바 등을 찾는 소비 패턴이 확대되고 있다.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경험을 콘텐츠화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게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손종원 셰프(왼쪽 사진)가 서울 강남구 조선 팰리스 내 이타닉 가든에서 방문객들에게 메뉴(오른쪽 사진)를 설명하며 미식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


평소에는 편의점 도시락, 저가 커피, 밀키트로 소비를 극도로 최소화하지만, 한번 쓰기로 마음먹은 레스토랑이나 팝업스토어, 콘서트, 한정판 아이템, 여행에는 주저 없이 지갑을 연다. 일상에서는 절약, 경험에는 플렉스(Flex)하는 패턴이다. 이를 소비의 양극화 또는 극단적 소비라고 종종 표현한다. 하지만 필자는 목적에 따른 소비 패턴의 분리, 이른바 스플릿 소비(Split Consumption)라고 바꿔 부르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이 경험은 꼭 해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반영된 소비 패턴이기 때문이다.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유명 셰프들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소믈리에의 추천으로 구성된 특별한 와인 페어링…. 특히 의식주 중 식(食)에 해당하는 먹고 마시는 행위는 그 가치 판단이 가장 빈번하게 드러나는 무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상을 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를 결정하고 보여주는 건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순간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사 앞에 있는 수많은 저가 커피숍, 1+1 프로모션이 걸린 상품부터 재고가 사라지는 편의점, 점심에는 구내 식당, 야근에는 배달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기 위해 동료들과 나누어 시키는 직장인.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이 같은 절약이 ‘결핍’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점이다. 지금 내가 절약하는 이유는 나중을 위한 투자라는 내러티브가 숨어 있다. 돈이 없어서 저렴한 음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나중에 크게 쓸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은 절약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플렉스의 기준은 가격이 아니라 콘텐츠와 내러티브다.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만한지,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 숏폼 영상으로 남겨 높은 조회수를 달성해볼 만한지 등이 요즘 세대가 지갑을 여는 기준이 된다.

서울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특급 호텔 로비 라운지, 레스토랑의 한정 시즌 메뉴, 브랜드 팝업 라운지 등은 대표적인 플렉스 무대다. 예약이 어렵고, 스토리가 있고, 남들이 어디냐고 물어볼 만한 식당과 바에는 1인당 수십만 원을 지불하면서도 “한번쯤 가볼 만하다”고 말한다. 해외에서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예약을 위해 여행 일정을 조정하거나, 특정 카페나 바 등을 성지순례하듯 방문하는 여행 루트는 이제 자연스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경험이 단발성이 아니라 ‘콘텐츠’로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맛이나 가격은 둘째 문제다. “예약 과정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 “공간이 SNS에 찍어 올릴 만큼 좋았는지”, “셰프나 바텐더와의 상호작용이 어땠는지”에 방점이 찍힌다. 즉,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건 음식이 아니라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콘텐츠로 되감기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관건은 “왜 이들은 특정 순간에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가”라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정체성, 다른 하나는 관계다. 먼저 정체성 측면에서 식음료 경험은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나는 이런 술을 마시는 사람”, “나는 이런 취향의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SNS 콘텐츠를 통해 충분히 전달된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 한 줄의 서사다. 관계적 측면에서는 ‘함께 먹는 경험’이 핵심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같은 시간,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는 경험의 희소가치는 더 높아진다. 이때 선택되는 식당과 바는 단순히 맛집이 아니라 관계의 전환점을 증명해 줄 무대이기도 하다.


스플릿 소비는 기업에도 하나의 과제를 던진다. 고객이 가진 지갑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최소 두 개의 지갑이 있다고 상정해야 한다. 일상을 위한 지갑과 경험을 위한 지갑. 일상을 위한 지갑을 겨냥한다면 브랜드는 ‘루틴의 일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합리적인 가격, 빠르고 쉬운 접근성, 간편한 조리, 섭취, 멤버십·구독·포인트 적립 같은 기능이 핵심이다.

반대로 경험을 위한 지갑을 겨냥할 때는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서는 가격이 아니라 서사, 공간, 연출이 우선 순위다. 한정 기간, 한정 수량, 공간 연출, 아트워크,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플레이리스트, 직원의 서비스 온도까지 모두 합쳐 하나의 경험 패키지를 만든다. 같은 월급과 같은 통장 안에서도 지갑은 전혀 다른 논리로 열리고 닫힌다.

변덕이 아닌 명확한 기준을 선택하며 이루어지는 스플릿 소비. 그 기준을 이해하는 순간, 2026년의 식탁과 잔 위에서 벌어지는 지출은 훨씬 더 잘 읽히기 시작할 것이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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