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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패션 거장’ 발렌티노 가라바니, 93세 일기로 별세

조선일보 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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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패션 거장’ 발렌티노 가라바니, 93세 일기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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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멧갈라에 참석한 발렌티노 가라바니./로이터 연합뉴스

2012년 멧갈라에 참석한 발렌티노 가라바니./로이터 연합뉴스


럭셔리 패션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일(현지 시각) 영국 BBC, 미국 CNN 등에 따르면 발렌티노 가라바니·지안카를로 지암메티 재단은 이날 발렌티노가 이탈리아 로마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며 “발렌티노는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는 길잡이이자 영감이었고 빛, 창의성, 비전의 진정한 원천이었다”고 밝혔다.

1932년 5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7세에 프랑스 파리로 패션 공부를 하러 떠났다. 이후 기라로쉬, 발렌시아가 등 디자이너 밑에서 일을 배웠다. 이후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온 그는 1959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발렌티노 하우스를 세워 본격적으로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2007년 7월 자신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붉은 드레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2007년 7월 자신의 시그니처 디자인인 붉은 드레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브랜드 발렌티노의 시그니처 디자인이자, 고인의 초기 디자인 철학이 담긴 붉은색 드레스는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가 사용한 붉은색이 ‘발렌티노 레드’로 불리며 브랜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고인이 은퇴 전 마지막 컬렉션을 선보인 2007년 패션쇼 피날레에선 모든 모델이 이 붉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발레티노는 평생 파트너이자 동료인 지안카를로 지암메티를 만나 1960년 협업을 시작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두 사람의 연인 관계는 1972년에 끝났지만 브랜드는 크게 성장했다. 발렌티노는 남성복과 기성복, 액세서리로 사업분야를 확장하며 위세를 떨쳤다. 이후 1998년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HDP에 약 3억달러(약 4423억5000만원)를 받고 브랜드를 매각한 뒤 고인은 디자인에만 전념했다. 고인은 2007년 은퇴 후 2016년 지암메티와 함께 자선 재단을 설립해 활동해왔다.

패션계 단골로 여겨진 고인의 작품은 유명 정관계 인사와 스타들이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1968년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와 재혼할 당시 입었던 크림색 레이스 드레스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이란의 마지막 국왕 샤 팔레비가 1979년 축출됐을 당시 그의 부인인 파라 디바 왕비도 이란을 탈출할 때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정장을 입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도 그의 드레스를 자주 입었다고 한다.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1991년 자신의 패션쇼에서 모델과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AP 연합뉴스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1991년 자신의 패션쇼에서 모델과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AP 연합뉴스


발렌티노의 드레스는 세계적인 배우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 로마 시사회에서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깃털 장식의 드레스를 입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입었던 흑백 가운과 케이트 블란쳇이 2005년 여우조연상을 받을 때 입은 노란색 드레스도 그의 작품이었다.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오드리 헵번도 고인이 만든 드레스의 팬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그는 논란의 여지 없는 우아함의 거장이자 이탈리아 오트 쿠튀르의 영원한 상징”이라며 “전설을 잃었지만 그의 유산은 여러 세대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인의 장례식은 오는 23일 로마의 한 성당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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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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