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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해 피살 은폐’ 판결문에 드러난 국민의 목숨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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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해 피살 은폐’ 판결문에 드러난 국민의 목숨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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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유족 이래진씨(왼쪽)와 유족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서해 피살 사건의 판결문 공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유족 이래진씨(왼쪽)와 유족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에서 서해 피살 사건의 판결문 공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해 공무원 피살 은폐’ 사건의 1심 판결문은 당시 정부가 국민의 목숨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2020년 9월 22일 북한군이 서해에 표류하던 우리 공무원을 발견하고 사살한 뒤 불태워 소각까지 한 사실을 특수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간 국민에게 숨겼다. 언론 보도에 대한 ‘보안 조사’도 지시했다. 북의 만행을 알면서도 숨진 공무원을 찾는 거짓 시늉을 하며 대규모 수색 쇼까지 벌였다. 23일 ‘사건 파장 보고서’는 “공개 시 남북 관계 경색”이라고 적었다.

정부가 당시 파악했던 북한군 내부 교신은 “빨리 7.62미리(기관총으로) 사살하라고 한다”였다. 사살하라는 상부 지시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당시 국정원장은 “김정은이 지시한 게 아니라 현장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군은 “지금 연유(휘발유) 뿌리면서 (소각)한다”고 했다. 우리 군은 불빛도 확인했다. 하지만 북이 ‘사살은 했지만 태우지는 않았다’고 하자 시신을 찾는다면서 수색 범위를 확대했다. 우리 국민이 이미 사살, 소각된 것을 알고도 북한 지휘부에 책임이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국민을 속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피살된 공무원을 ‘월북’으로 몰았다. 근거는 ‘월북 언급을 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정도였다. 사라진 구명조끼는 없다는 선원들 증언과 공무원이 ‘북한’을 검색하거나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수사 내용은 무시했다. 기진맥진한 공무원은 ‘살려주세요’라고 했지만 북한군은 “끌고 가는데 자꾸 (바다에) 잠긴다”고 교신했다. 극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월북’ 단어를 썼을 가능성도 무시했다.

판결문을 통해 합참이 애초에 “실종 예상 시간대 조류가 북에서 남으로 흘러 월북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라고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당시 문 대통령은 ‘국방부 발표가 단정적’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확인했다는 표현을 썼는데 단언할 수 있나’라고 했다. 사실상 질책한 것이다. 이후 해경청장은 수사팀의 반대에도 “월북이 맞다”고 밀어붙였다.

그런데도 사건 혐의자 5명은 모두 1심에서 무죄가 됐다. 상대가 북한이라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가 컸다. 피살된 공무원 아들은 문 대통령에게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편지를 썼다. 당시 대통령은 자고 있었고 다음 날에야 보고를 받았다. 이들에게는 국민의 생사 문제보다 ‘남북 관계’가 더 중요했다. 유족들은 “특검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금도 민주당 정권이니 특검 아니고선 진실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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