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교육에서 AI를 무조건 쓰게 하거나 AI를 잘 쓰게 하는 일이 아니다. AI를 써야만 하는 영역, AI를 안 써도 되는 영역, AI를 쓰면 안 되는 영역부터 구별해야 한다. 속도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의 ‘뇌 썩음 희생’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는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하며,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면서 정신적, 지적 상태가 악화하는 현상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을 시켜 글을 쓸 때도 ‘인간의 뇌와 인지가 썩어간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AI 정책은 이런 위험성을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일례로 2025년 12월16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내놓은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을 보면 ‘AI 기술과 산업’은 선명하게 눈에 띄지만 ‘AI가 인간에 끼칠 위험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위험성은 AI 도입이 ‘인간의 뇌와 인지에 끼치는 영향’이다. 실제로 챗GPT 같은 언어모델 AI는 교육 현장뿐 아니라 직업 현장에서도 엄청난 ‘인지 퇴보’를 낳고 있다. 한편으로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지만 동시에 지적 능력의 하락도 목격된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챗GPT 출시 후 불과 3년도 안 되는 동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생산성 향상과 지능 퇴화가 같은 사람한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심각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빛이 그늘을 가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AI를 활용해 업무 생산성을 향상하는 시니어(숙련자)가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AI에 일을 떠맡기며 능력이 퇴화하는 주니어(학생과 신입)가 있다. 주니어한테서 벌어지는 일에 당장 주목하지 않으면, 시니어의 빛에 가려져 주니어의 그늘은 더 짙어질 것이다.
AI는 이미 성장한 사람을 돕는 기술이며, 아직 성장할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AI는 역량을 증강하고 증폭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주니어는 애초에 밑천이 별로 없다. AI가 인터뷰 녹취를 풀어준들, 기사 작성 능력이 부족한 신입 기자는 중견 기자보다 도움을 덜 받는다.
요컨대, 인간 지능을 잘 쓰는 사람이 AI도 잘 쓴다. 이런 문제는 특히 한창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에게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국가 정책이 생산성 향상이라는 꽃놀이에 취한 사이, 주니어는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체적으로 문제를 살펴보자. 얼마 전에 명문대의 집단 부정행위 문제로 떠들썩했는데, 챗GPT 출시 이후 초중고 및 대학의 학생들은, AI 활용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과제와 시험에 실제로 AI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부정행위와 표절에 주목했지만,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AI가 학생들의 뇌와 인지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생들의 뇌는 썩어가고 있다.
정부 정책, ‘학생들 뇌 썩음’ 간과
AI를 시켜 글을 쓰게 할 때 인간의 뇌에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25년에 발표된 MIT 미디어랩의 연구는 중요한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대학생 54명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에세이를 쓰게 했다. 첫째 집단은 챗GPT를 사용해 글을 쓰게 허용했고, 둘째 집단은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게 했으며, 셋째 집단은 그냥 쓰게 했다. 글을 쓸 때 뇌파를 측정하면서 4개월간 추적 관찰했다. 집단별로 뇌의 활성 정도를 조사했더니, 챗GPT 사용 집단의 뇌는 기억, 언어, 비판적 추론과 관련된 영역에서 낮은 수준의 활성도를 보인 반면, 직접 글을 쓴 집단의 뇌는 골치 아프다는 듯 엄청나게 활성화됐다. 또한 챗GPT 집단은 신경적, 언어적, 행동적 차원에서도 일관되게 낮은 성과를 보였으며, 자신이 글을 썼다는 애착감도 없었고, 쓴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이들은 4개월 뒤에 챗GPT 없이 글을 쓰게 했더니, 글을 쓰지 못했다. 반면 그냥 쓰게 한 셋째 집단은 이들과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고, 인터넷 검색을 허용한 둘째 집단은 중간 정도의 결과를 보였다.
챗GPT에 인지 활동을 내맡기면 그 어떤 뇌 발달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무서운 결과이다. 더 주목할 점이 있다. 위의 실험 집단은 이미 성인인 대학생이다. 만약 발달 단계에 있는 초중고생이 글쓰기를 AI에 외주를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주 낮은 인지 단계에 머문 채, 아무런 발달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할 줄 알던 일을 못하게 되는 탈숙련(de-skill)은 인지 활동을 덜게 되는 ‘인지적 짐 덜기(cognitive offloading)’라고도 한다. 탈숙련 혹은 인지적 짐 덜기가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엑셀을 사용하면서 회계사의 단순 계산 능력은 떨어지지만, 세금 전략을 짜거나 위험을 분석하는 등 더 고차원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효과는 이미 고된 훈련을 거쳐 전문 역량을 지닌 시니어에게나 해당한다.
직장 신입도 그렇지만 학생은 더하다. 학생 때는 밑천이 될 역량을 쌓고 언어력(literacy)과 수리력(numeracy)을 훈련해야 한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도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AI는 고생스럽게 이겨내야 하는 훈련 과정을 생략하고, 안 하고도 한 척하게 해준다. 겉으로는 내가 해낸 것 같지만, 실제로 나는 새로 할 줄 알게 된 것이 없다. 앞의 챗GPT 실험이 보여준 무서운 함의가 그것이었다.
발달 단계 맞게 도구 쥐여줘야
그렇다면 AI에 글을 쓰게 하면서 새로 얻을 수 있는 인지 능력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학생 시절에 하는 글쓰기는 인지 훈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인지 훈련’ 혹은 ‘생각 훈련’과 별개의 작업이라고 여기는 것은 큰 오해다.
고생하며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글쓰기는 정리된 생각을 줄줄 뽑아내는 과정이 아니다. 글쓰기는 생각을 짜내고 숙성시켜 새로운 경지로 올리는 고된 작업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 훈련 과정이다. 체육 시간에 프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다고 체력이 향상되는 게 아니듯, 챗GPT에 글을 쓰게 내맡기고 정작 자신은 생각 활동을 멈추면 생각의 체력은 저하될 뿐이다. 앞의 실험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현장에서 AI의 사용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2025년 12월 내가 발제자로 참여한 국회 토론회에서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학생들이 AI를 쓰고 있고, AI 사용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에서 출발해 AI 교육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상황 인식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정책 방향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담배 피우는 학생이 많고 흡연을 막을 수 없다 할지라도, 적절한 금연 정책을 찾아 시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몇몇 AI가 교육적으로 해롭다면, 그런 AI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슬쩍 유도하는 것(‘너지’)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교육에서 AI를 무조건 쓰게 하거나 AI를 잘 쓰게 하는 일이 아니다. AI를 써야만 하는 영역, AI를 쓰지 않아도 되는 영역, AI를 쓰면 안 되는 영역부터 정밀하게 구별해야 한다. 적어도 글을 대신 써주는 AI의 인지적 부작용은 실증적으로 입증되고 있지만 긍정적 효과는 별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속도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의 희생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교육은 무를 수 없다. 교육에는 시기가 있다. 다 큰 성인의 관점에서는 어릴 때 무엇이 필요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발달 단계에 맞게 도구를 쥐여주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안)’은 오작동, 편향, 개인정보 유출 등 AI 안전 문제를 우려하면서 신뢰성, 공공성, 안전성, 투명성 등 책임도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조해 마땅하다. 하지만 AI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훼손할 수 있다는 부정적 되먹임은 고려조차 없다. 훼손은 뇌 썩음에서 시작한다.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 경영학 교수 로널드 퍼서는 최근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약상이 무료 샘플을 나눠주면서 개인 책임을 강조하듯, 챗GPT를 팔면서 개인 AI 윤리를 개발하라고 훈계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이 비유가 지나치다고 여긴다면, 당장 현장의 교육자들이 느낀 당혹감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AI로 인해 교육이 망했다는 곡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김재인
기술철학과 예술철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로,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이다. 저서 과 <뉴노멀의 철학>으로 각각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들뢰즈 입문>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공동 뇌 프로젝트> 등 저서와 <천 개의 고원> <안티 오이디푸스> 등 역서가 있다.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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