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외로움도 함께 밀려온다.
자유와 고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 그 둘을 맘껏 즐길 준비가 됐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무인도에 떠밀려온 게 아니라 그것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고 여유롭다.
오늘은 아무 계획 없이 맘 가는 대로 하루를 지내보리라.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 보니 어느새 여명이 밝았다.
한숨 더 잘까, 그만 일어날까 고민하다 스마트폰에 손을 댔다.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일어나긴 싫고 배는 고프고, 밥을 먹을까 말까, 에이, 그냥 굶자.
이불 속에서 열다섯 번이나 이랬다저랬다 생각을 굴렸다.
그새 또 30분이 흘렀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혼밥'의 시간이다.
쓸쓸하다.
냉장고를 일단 열어본다.
투명한 유리그릇 속에서 몇 가지 반찬이 얼굴을 내민다.
마트 매대에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초록색과 주황색이 눈에 띄었다.
시금치 무침과 당근 볶아 둔 걸 꺼냈다.
큰 냄비 속에 무청이 잔뜩 들어있는 된장국을 한 그릇 덜어서 냄비에 데운다.
4인용 식탁에 1인분 음식을 차렸다.
주방과 거실이 연결된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앉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먹는데 잘 넘어가지 않는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밥맛이 없다.
다시 또 고민이다.
계속 먹을까, 그만둘까.
20대 시절에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밥 먹을 수 있으면 독립한 거나 다름없다고.
몇 번을 시도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40대 중반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혼자 먹기에 도전했다.
식당 안은 북적거렸다.
쭈뼛거리면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빈자리가 없다.
주인은 어떤 남자가 혼자 식사하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합석하겠냐고 물었고 곧바로 그 남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얼떨결에 생면부지인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게 됐다.
주변을 살펴보면서 어색하지 않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식사했다.
내 앞의 남자가 먼저 일어났다.
잠시 후 다른 남자가 그 자리에 앉아 식사 나오기를 기다렸다.
밥값을 내고 식당을 나서는데, 그 짧은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치 인생을 다 겪은 것처럼,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마음이 깊어졌다.
어렵고 난해한 사건 하나를 말끔히 해결한 듯 자신감이 차올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후로 어디에서나 혼자 밥 먹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조금 외로웠지만 당당하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이제는 혼자 밥 먹기 싫다.
인생 최고의 쾌락 중 하나가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라고 하는데, 그 말에 점점 공감이 짙어진다.
누구와 먹을지 고민하지 않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사자와 늑대의 삶과 같다고 한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혼자 먹는 건 고역이다.
오죽하면 함께 밥 먹어 줄 사람을 찾는 글이 '당근마켓'에 심심찮게 올라온다니 남의 일 같지 않다.
2025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21%에 달하면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고 한다.
전체 세대 중 1인 세대가 42%이며 60대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농촌에는 70대 이상 1인 가구가 거의 절반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의 최고 고민거리는 '혼밥의 시간'이다.
그나마 경로당에 가면 어떻게든 여럿이 밥을 먹을 수 있긴 하지만 각자 혼밥의 시간은 점점 늘고 있다.
대화 상대가 없는 식사시간은 자칫 우울해지기 쉽고 정서적 허기로 이어진다.
아침 밥상에서 수저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TV를 켰다.
마침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사람의 모습을 한 로봇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싱크대에서 컵을 꺼내 물을 떠다 줄 수 있다고 한다.
대화도 가능하다고 하니 가까운 미래에 로봇 하나씩 들여놓고 혼밥의 시간에 함께 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덜 외로울까? 무섭게 변하는 세상을 맞아 나의 미래가 걱정되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김애중 기록활동가·수필가 혼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