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정부안보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었을 때 거의 모든 나라가 봉쇄와 이동 제한,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강력한 방역 정책을 시행했다.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였지만, “왜 자유를 제한하냐”는 반발 역시 뒤따랐다. 그런데 이처럼 강력했던 코로나19 관련 정책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에 대해 반발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미국 샌타페이연구소의 새뮤얼 볼스 교수와 카트린 슈멜츠 연구원이 독일 성인 3천여명을 대상으로 기후정책에 ‘자발적’ 참여와 ‘강제적’ 참여에 대한 동의 수준을 분석해보니, 강제적일 경우 동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조차도 실내 온도 설정이나 육류 소비 제한 등 의무·금지·제한 조처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자유를 침해한다”며 기후정책에 반발하는 이 ‘통제 회피’ 성향은 코로나19 정책에 대한 것보다 52%나 더 높았다.
이런 결과는 기후변화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워질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봉에 선 ‘기후 부정’은 갈수록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라며 과학 자체를 무시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가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탈퇴를 선언하며 인류의 공동 과제를 끝내 내팽개쳤다. 화석연료 산업을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등 전세계에 ‘더 많이 채굴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논의를 두고 ‘자해’라고 표현한 조선일보의 사설. |
그런데 이런 노골적인 ‘기후 부정’보다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후 침묵’일지도 모른다. 극우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반발을 끌어모아 자신들의 땔감으로 삼는데, 적절한 땔감이 없다면 제대로 불을 붙일 수 없다. 기후 부정에 은근슬쩍 땔감을 내주고 있는 것이 바로 기후 침묵이며, 이는 주로 “불가능한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 실현 가능한 것을 추구하자”는 ‘현실주의’로 포장되어 있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2도로 제한하는 목표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인류는 여전히 번영할 수 있다”고 말했던 억만장자 빌 게이츠의 말이 정확히 그런 태도를 대변한다.
누구나 자유를 욕망하고 의무·금지·제한은 싫어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화석연료를 쓰는 게 불가피하다’ 같은 현실주의는 그야말로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 ‘더 네이션’의 환경전문기자이자 비영리 기후언론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의 공동 창립자 마크 허츠가드는 최근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정치적 현실은 인간의 행동을 통해 바꿀 수 있지만, 물리와 화학 법칙은 결코 바꿀 수 없다.” 지구 온도가 1.5~2도 올랐을 때 벌어질 해수면 상승 등 파괴적인 기후변화는 ‘정치적 현실’을 뛰어넘는 ‘과학적 현실’이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여전히 번영”할 인류에 속하지 못할 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후 침묵과 내연기관 자동차의 전면 금지 가운데 과연 무엇이 더 현실적일까?
의무·금지·제한을 앞세운 기후 대응이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이 연구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의무·금지·제한은 나쁘다’거나 ‘반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당히 하라’가 아니다.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금연부터 코로나19 방역 정책까지, 의무·금지·제한을 바탕으로 삼아야만 작동할 수 있는 정책의 영역은 분명히 있다. 또 의무·금지·제한의 방식이 반발을 부른다고 해서 기후 목표와 정책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의무·금지·제한에 들였던 역량을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주는 활동의 비용을 높이고, 더 나은 선택지를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 쏟는 것은 가능하다.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볼스는 이번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가치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있고, 그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고 싶어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후 대응에 대한 반발을 넘기 위해 필요한 건 현실주의를 가장한 타협이나 포기가 아니라, 더 많은 ‘가치의 공유’란 얘기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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