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작 애니메이션의 환상적인 모험을 무대에 그대로 펼쳐놓는다. 사진은 센(치히로)과 목욕탕 직원들이 힘을 합쳐 오물신에 박힌 잡동사니를 제거하는 모습. TOHO Theatrical Dept. 제공 |
지브리 스튜디오는 두 시간짜리 애니메이션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십수만 장의 그림을 그려 넣는 ‘수작업’으로 유명하다. 몇 초에 불과한 장면조차 컴퓨터그래픽 대신 손으로 만들어왔다. 바람의 결과 옷자락의 흔들림, 걸음의 미묘한 리듬까지 움직임을 쪼개고 그림을 덧붙여 완성한 세계다. 때로는 어긋난 흔적도 남겨두는 그 느리고 집요한 노동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유의 온기와 생동감을 만들어왔다.
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작 애니메이션(2001년)에서 10살 소녀의 환상적인 모험을 무대에 펼쳐놓는 것을 넘어 그 제작 태도까지 구현한다. 퍼핏티어가 직접 인형(퍼핏)을 조종하고, 장면 전환조차 사람의 몸과 소품으로 해결하는 연출은 아날로그적 미감을 무대 전면에 드러낸다. 관객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세계가 만들어지는 시간과 노동의 감각까지 목격하게 된다.
지난 7일 개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오리지널 투어는 1차 티켓 오픈과 동시에 3만여석이 매진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22년 일본 도쿄에서 초연한 이 작품은 리허설 당시 로런스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모두 받은 베테랑 연출가 존 케어드가 매일 캐스트와 스태프들에게 ‘오늘의 미션 임파서블’에 대해 운을 뗐다고 한다. 상상력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는 어려움 때문이었는데, 한국 공연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크고 작은 캐릭터들과 마법의 순간들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팬들의 기대가 컸다.
음악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가오나시’와 같은 원작 인기 캐릭터들을 무대에 그대로 재현한다. TOHO Theatrical Dept. 제공 |
공연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 치히로 가족이 차를 타고 시골로 향하던 중 금지된 ‘신들의 세계’에 들어서면서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의 목욕탕에서 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 장르적으로는 연극에 음악과 퍼포먼스가 결합된 ‘음악극’으로 볼 수 있다. 뮤지컬처럼 노래가 서사를 이끌기보다는, 11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배경음악처럼 장면을 충실하게 감싼다.
작품의 독창성과 매력이 되는 지점은 ‘움직이는 신체’다. 무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배우가 33명이나 등장한다. 치히로, 하쿠 등 주역들 외에 다양한 정령들은 인형으로 등장한다. 배우들은 50체가 넘는 퍼핏을 직접 움직이며 연기한다. 화면 속 익숙한 캐릭터들이 무대 위에서 구현된 모습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일은 이 작품의 큰 즐거움이다. 먼저 한국 무대에 오른 <라이프 오브 파이>가 퍼핏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했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인형 자체가 곧 캐릭터로 존재한다.
인기 캐릭터인 ‘가오나시’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크기가 변화하는데 1명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12명의 배우가 폭주하는 모습을 구현한다. 거미처럼 팔을 6개나 지닌 ‘가마 할아범’은 배우의 두 팔과 두 다리 외에 등 뒤로 뻗어 나오는 긴 팔을 최대 6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하쿠가 변신한 모습인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은 길이 4m가 넘는 크기인데, 등과 척추를 따라 4000가닥의 털을 수작업으로 심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하쿠. TOHO Theatrical Dept. 제공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치히로)을 돕는 하쿠가 용으로 변신한 모습. TOHO Theatrical Dept. 제공 |
유바바의 방에 굴러다니는 초록색 ‘돌머리 삼총사’는 훈도시만 입은 배우의 얼굴과 양손에 든 두 개의 얼굴로 표현되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몸짓이 큰 웃음을 준다. 보일러실에서 석탄을 옮기는 깜찍한 ‘숯검댕이’부터 분노를 표현하는 거대화한 유바바까지 장면마다 볼거리가 이어진다. 지난 9일 관람 회차에선 1막이 끝나기도 전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올 정도로 관객들의 호응도 폭발적이었다. 오물신에 박힌 잡동사니를 모두가 힘을 합쳐 끄집어 낸 뒤 부채를 흔들며 축하하는 장면에서 관객들도 목욕탕 일꾼이 된 것처럼 함께 기뻐한 것이다.
무대 연출 역시 사람의 움직임과 소품으로 공간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케어드 연출은 지브리의 여러 애니메이션 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무대화가 가능했던 이유로, 이야기 대부분이 목욕탕에서만 펼쳐진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그 목욕탕도 단일한 공간은 아니다. 유바바가 머무는 꼭대기부터 지하의 보일러실까지 수직적인 구조에, 미로처럼 얽힌 내부까지 무대 위에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벽처럼 보이는 소품으로 길을 막았다 열며 공간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힘겨운 몸짓으로 위아래 이동의 감각을 전달한다. 그렇게 몸과 함께 재배치되는 공간은 수많은 방과 통로를 품은 목욕탕으로 변신한다.
원작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높은 치히로와 하쿠 역, 원작 성우가 참여하는 유바바 역까지 원작의 팬이라면 가슴이 두근댈 만한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다. 관객을 순식간에 환상적이고 마법으로 가득 찬 무대로 이끄는 작품이지만 무대 밖의 아쉬움이 있다. 객석 양쪽 끝이나 무대 위쪽에 자막이 있다보니 대사를 따라가려면 극에서 눈을 떼야 한다. 공연 전에 애니메이션을 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 예술의전당에서 3월22일까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치히로)이 기차를 타고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 원작에서 사랑받는 장면 중 하나인 이 여정도 서정적인 연출로 무대화됐다. TOHO Theatrical Dept. 제공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지하 보일러실에서 석탄을 나르는 숯검댕이들의 모습. 사진 Johan Person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목욕탕을 운영하는 마녀 ‘유바바’. TOHO Theatrical Dept. 제공 |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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