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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참 착해보이는데 노총각...” 부인 오소영씨가 말하는 안성기

조선일보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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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참 착해보이는데 노총각...” 부인 오소영씨가 말하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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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인터뷰서 “그는 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좋은 배우, 좋은 아빠 되려 늘 노력해”
“입관식 때 ‘우리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인사로 떠나보내”
배우 안성기와 부인 오소영씨가 2011년 10월8일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 참석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대 조소과를 졸업한 부인 오씨는 영화계 지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인이었다./오소영씨 제공

배우 안성기와 부인 오소영씨가 2011년 10월8일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에 참석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대 조소과를 졸업한 부인 오씨는 영화계 지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인이었다./오소영씨 제공


지난 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의 41년 동반자인 아내 오소영(67)씨는 “남편을 보내고 나니 정신 없어 감사를 전하지 못한 분들이 생각났다”며 “많은 분이 마지막 길을 끝까지 배웅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오씨는 19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많은 후배분이 남편과 좋았던 추억을 얘기해 줘서 감동했다”고 했다. 또 “신영균 회장님과 김동호 전 위원장님 등 원로분은 후배를 먼저 보내는 마음이 무거우실 텐데도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남편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면서 인사드리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가 언론에 심경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85년 안성기와 결혼한 오씨는 40년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배우 안성기가 돋보이도록 뒤에서 돕는 데 힘썼다. 오씨는 장례를 치르느라 지친 탓에 목소리가 쉬고 갈라져 대화가 쉽지 않은데도 “많은 분들께 감사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오씨는 “남편이 쓰러지던 날(지난해 12월 30일)도 여느 날처럼 평온한 하루였다”고 했다. 의자에 편하게 앉아 TV를 보고 있던 안성기에게 오씨는 간식거리를 주며 “이거 드세요”라고 했다. 그 말이 41년을 함께한 남편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 됐다. 입관식 날, 오씨는 남편의 차가운 뺨을 어루만지며 못다 한 감사를 전했다고 했다. “그동안 정말 정말 더없이 사랑했어요. 좋은 남편이 돼줘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 두 아들한테 좋은 아빠 돼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말했다. “우리 다음 세상에서 부부로 다시 만나요.”

추모 미사가 열린 명동성당은 1985년 5월 9일 두 사람이 결혼한 곳이기도 하다. 오씨는 “추모 미사가 열리는 동안 결혼식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며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은 곳에서 부부로서의 헤어짐도 허락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안성기와 오소영씨 결혼식 장면. 두 사람은 1985년 5월9일 명동성당에서 혼배 미사를 드렸다./오소영씨 제공

안성기와 오소영씨 결혼식 장면. 두 사람은 1985년 5월9일 명동성당에서 혼배 미사를 드렸다./오소영씨 제공


두 사람은 오씨가 이화여대 조소과 4학년이던 1982년 처음 만났다. 서울 태릉으로 롤러블레이드를 타러 간 오씨는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던 신승수 감독의 눈에 띄었다. “CF 모델을 한 번 해보지 않을래요.” 한 학기 등록금이 70만원쯤하던 시절, 출연료가 30만원이라는 제안에 마음이 동했다. 그리하여 출연한 CF가 삼성물산의 캐주얼복 ‘빼빼로네’였다.


어느 날 신 감독이 “지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배창호 감독도 오고 여러 사람 온다”고 권해 따라갔다. 문병 온 사람들 중에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참 착해보이네, 입술도 예쁘고.” 그게 이후 평생을 함께할 남편 안성기의 첫인상이었다. 오씨는 “안성기가 누군지도 몰랐고, 남자 나이 스물일고여덟이면 결혼하던 시절에 서른 넘은 그 사람은 제게 노총각으로만 보였다”고 했다.

‘노총각’의 난관을 돌파한 것은 안성기 자신이었다. 오씨에게 첫눈에 반한 그가 신 감독에게 “한 번만 둘이 만나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사실을 오씨는 나중에 알게 됐다. 신 감독의 주선으로 성사된 어느 찻집에서의 어색한 첫 만남은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과 헨리 무어 조각전 데이트로 이어졌다. 오씨는 “그 무렵엔 콧대가 높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됐다”고 했다.

안성기가 ‘깊고 푸른 밤’(1985) 촬영 때문에 미국으로 가야 했을 때가 고비였다. 몇 개월이나 떨어져 있어야 하니 오씨는 눈물부터 났다. “그렇게 오래 못 보고 어떻게 사느냐”며 우는 오씨를 달래기 위해 안성기는 미국에서 틈날 때마다 러브레터를 보내왔다. 성탄절이던 1984년 12월 25일 새벽 1시에 써보낸 편지는 “잘 지냈겠지? (잘 못 지냈어도 잘 지낸 걸로 하자.)”라는 장난스러운 첫 줄로 시작된다. 오씨가 먼저 보낸 성탄절 카드를 두고 “네 카드를 모두에게 자랑했다. 모두들 니가 이쁘다고 야단들이었다. 미희도 놀래더구나(기분 좋지!)”라며 구구절절 애정이 담긴 문장을 적어보냈다. (편지 속 ‘미희’는 같이 출연한 배우 장미희를 말한다.)


1984년 12월25일 새벽 1시, 안성기가 부인 오소영씨에게 써서 보낸 러브레터. 미국에서 영화 '깊고 푸른 밤' 촬영 중이던 그는 결혼을 약속한 오씨에게 지극한 애정을 수시로 편지에 담아 부쳤다./오소영씨 제공

1984년 12월25일 새벽 1시, 안성기가 부인 오소영씨에게 써서 보낸 러브레터. 미국에서 영화 '깊고 푸른 밤' 촬영 중이던 그는 결혼을 약속한 오씨에게 지극한 애정을 수시로 편지에 담아 부쳤다./오소영씨 제공


아역배우를 하다 그만두고 서른 넘어 다시 배우를 시작한 안성기에게 아내는 든든한 반려자이자 매니저이자 코디네이터였다. 오씨는 소속사가 없던 그의 의상 준비를 돕고 운전사로도 뛰었다. 오씨는 “남편이 계속해서 좋은 작품 출연하고, 상을 받으니까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마냥 기쁘기만 했다”고 말했다. “만약 남편이 밖에서만 좋은 배우였다면 저부터가 가식적인 모습에 질렸을 것”이라며 “집에서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40년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장남 안다빈씨는 지난 17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씨는 “다빈이와 필립이도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며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평생 노력한 남편의 뜻에 따라 두 아들도 착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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