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
192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르웨이 작가 크누프 함순은 말년에 열렬한 나치 지지자였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나팔수 요제프 괴벨스를 만났을 때, 함순은 자신이 받은 노벨상을 그에게 주며 존경한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작가는 나치 부역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그의 나이 85세. 국민은 ‘노르웨이 현대문학의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그랬을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정부는 함순을 감옥 대신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신적 기능이 영구적으로 손상됐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의 마리아 마차도가 엊그제 백악관에서 자신이 받은 노벨상 진품 메달을 트럼프에게 직접 선물했다. 독재자 마두로 축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였다. 정상적인 품격을 갖춘 지도자라면 사양했을 선물이었다. 평생에 걸친 타인의 희생과 헌신을 덥석 받는 대신, 그 영광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모습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반응은 달랐다. “마리아는 내가 이룬 업적을 기려 그녀의 노벨상을 나에게 줬다. 이건 상호 존중을 보여주는 제스처”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썼다. 자신이 받을 만해서 받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메달이 담긴 대형 액자를 들고 활짝 웃는 사진도 함께 공개했다. 평화상을 주관하는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즉각 공식 성명을 내고 “수상자와 메달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마차도가 작년에 이 상을 받은 직후 트럼프는 “내가 받을 상을 왜 네가 받냐”고 격노했다고 한다. 마차도가 베네수엘라 차기 지도자가 되지 못한 진짜 이유도 ‘내 상을 가로챈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신들은 이번 노벨상 진품 증정은 트럼프의 마음을 달래보려는 ‘눈물겨운 외교’라고 썼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은 그만큼 오래됐고 유명하다. 오바마가 재임 시절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트럼프는 “세상은 불공정하다”고 푸념했다.
▶1기 트럼프 시절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도 트럼프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한다. 평화 협상·무역 협상을 위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노벨상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영광조차 냉혹한 국제정치 거래 도구로 추락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이번에는 베네수엘라의 실권을 위한 정치적 조공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래저래 상의 권위는 곤두박질 중이다. 힘이 있으면 소장할 수 있는 트로피일 뿐인가. 이런 식이라면 노벨상 반대 운동이 일어나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어수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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