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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인사이드] 미국선 ‘300조 합의’, 한국은 ‘0원’... 담배소송 왜 다른가

조선비즈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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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인사이드] 미국선 ‘300조 합의’, 한국은 ‘0원’... 담배소송 왜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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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역 인근 흡연구역. /뉴스1

15일 서울역 인근 흡연구역. /뉴스1



“과학과 법의 괴리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낸 5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또다시 패소한 직후, 정기석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의학계가 담배를 폐암의 주범으로 지목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법원의 판단은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은 흡연과 폐암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은 인정하면서도, 담배 회사의 법적 책임을 묻기에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미국에선 담배 회사들이 재판도 하기 전에 300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며, 합의에 나섰지만 한국에선 ‘0원’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

◇ 법원 “통계적 연관성만으로는 개인 인과관계 입증 안 돼”

서울고등법원 민사6-1부는 15일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쟁점은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였다. 건보공단은 흡연자의 폐암 발병 상대 위험도가 비흡연자보다 최대 수십 배에 달한다는 역학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도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주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패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주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패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법원은 “역학적 연구 결과만으로는 특정 개인의 폐암이 흡연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계는 집단의 경향을 설명할 뿐, 개인의 질병 원인을 직접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개인의 흡연 기간, 기존 건강 상태, 생활 습관, 가족력 등 다양한 요인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사건 대상자들이 30년 이상 장기간 흡연했다는 점에서 개별적 인과관계를 따져볼 여지는 있지만, 그에 앞서 담배 회사의 불법행위가 먼저 입증돼야 한다고 봤다.

건보공단은 담배 회사들이 담배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고의로 은폐하거나 축소·왜곡해 왔다고 주장했다. 니코틴 함량을 낮추지 않은 점, 첨가제 사용, 천공 필터 도입 등도 설계상 결함이라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니코틴 저감 담배나 무첨가 담배가 더 안전하다고 볼 의학적 근거가 없고, 천공 필터가 일반 필터보다 더 유해하다고 일반화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담배 회사들이 위험성을 고의로 숨기거나 허위로 알렸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개인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국내 첫 담배 소송은 1999년 제기됐다. 2014년 대법원은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은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암 발병 원인이 흡연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후 제기된 유사 소송도 모두 같은 결론을 맞았다.

◇ 미국은 왜 달랐나… 내부 고발과 법률로 갈렸다

미국도 처음부터 담배 소송에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부터 소송이 이어졌지만, 과학적 증거 부족과 담배 회사들의 강력한 로비로 패소가 반복됐다.

전환점은 1994년이었다. 담배 회사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기업들이 담배의 중독성과 유해성을 인지하고도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46개 주정부가 소송에 나섰고, 담배 회사들은 총 2060억달러(약 300조원)의 의료비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법원이 책임을 인정한 결정적 근거는 ‘흡연의 위험성’ 자체가 아니라, 이를 알고도 숨긴 기업의 불법행위였다.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1988년 ‘담배 손해 및 치료비 배상법’을 근거로 12년 이상 흡연 후 폐암·인후암 진단을 받은 약 110만명이 담배회사 3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5년 1심과 2019년 항소심에서 환자 손을 들어줬고, 주정부의 치료비 회수 소송을 포함한 약 33조원 규모 배상 합의도 승인했다. 법원은 담배회사가 경고 의무 위반, 소비자 기만, 생명·신체 안전권 침해 등 4가지 퀘벡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한국 법원도 흡연이 폐암의 주요 원인이라는 의학적 합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통계적 개연성과 개인 사건의 법적 인과관계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결국 한국 담배 소송의 승소 포인트는 ‘통계’가 아니라 법원이 요구하는 ‘증명’에 있다”며 “담배 회사가 위험성을 알면서도 속였다는 직접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법원의 판단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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