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화계 거장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 /로이터 연합뉴스 |
이란 영화계 거장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슬람 정권은 사실상 붕괴했다”고 말했다.
파나히 감독은 16일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내 생각에 이 정권은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무너졌다”며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상적으로, 심지어는 환경적 측면에서까지 무너져 내렸고, 남아 있는 것은 껍데기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일어나는 일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르다”며 “이 정권이 얼마나 오래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CNN은 파나히 감독의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이 ‘이란의 미래를 내다보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영화는 죄수였던 남자가 과거 자신을 심문했던 것으로 보이는 인물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복수와 용서라는 갈림길에 선 남자의 도덕적 딜레마를 그린다.
이와 관련해 파나히 감독은 “내게 중요한 것은 미래, 그리고 (이슬람) 정권 이후의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폭력의 악순환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지금부터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나갈 준비를 할 것인가?”라며 “영화 속 모든 것은 결국 이 질문에 도달하기 위한 핑계 또는 구실일 뿐이다.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끝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나 소련 붕괴 이후 협력자들이 본보기로 처벌받았던 사례를 언급하며 “그런 일이 내 나라에서도 벌어질지, 아니면 우리가 좀 더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파나히 감독은 과거 자신이 테헤란의 악명 높은 에빈 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이란과 이스라엘의 ‘12일 전쟁’으로 교도소에 미사일이 떨어졌던 당시도 떠올렸다. 그는 “수감자들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잔해 밑에 깔린 심문관들을 꺼내기 시작했다”며 “그들이 심문관들을 용서해서가 아니다. 수감자들의 인간적인 양심이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양심이 죽는다면 인간도 죽는다”고 강조했다.
파나히 감독은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그 안에서 일하는 개인들은 거대한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다”며 “문제는 내가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거나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교도소의 하급 교도관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언제나 정치범들에게 호감을 보였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슬람 공화국이 무너질지 묻곤 했다”고 말했다.
한편 파나히 감독은 1995년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 감독주간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이후 연출작 ‘거울’(1997)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써클’(2000)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택시’(2015)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3개의 얼굴들’(2018)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지난해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 내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룬다는 이유로 수차례 처벌을 받았지만, 이란 정부의 계속되는 제작 검열 속에서도 끊임없이 돌파구를 찾아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2010년 징역 6년과 영화 제작·여행 금지 20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가택연금으로 형이 완화됐다. 2022년 이란 당국은 그를 다시 체포한 뒤 2010년 선고했던 징역형을 다시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파나히 감독은 2023년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인 끝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란 법원은 지난해 말에도 파나히 감독의 ‘선전 활동’ 혐의를 두고 궐석 재판을 벌인 끝에 징역 1년과 출국 금지 2년을 선고했다. 판결 당시 파나히 감독은 영화 홍보를 위해 국외에 머무르고 있었으며, 현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체류하고 있다고 한다.
파나히 감독은 지난 4일 항소심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직 변호사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아직 여기에 있는 건 캠페인 덕분이다. 모두가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저도 약속을 했기 때문에, 모두의 노력을 망치고 떠나는 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시상식이 끝나면 이란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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