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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가대표 AI,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조선비즈 설성인 테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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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가대표 AI,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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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일명 국가대표 AI)’ 프로젝트가 지난 15일 2단계 진출 3개 정예팀(LG AI 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을 발표하면서 7부 능선을 지나고 있다. 올 연말까지 최종 2개 정예팀을 가려내는 게 목표다.

이재명 정부는 핵심 목표인 글로벌 AI 3강 도약을 위해 작년 6월 ‘국가대표 AI’ 모델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자는 야심찬 사업을 추진했다. 시쳇말로 구경조차 힘들다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 인건비·연구비 등을 정부가 지원할테니 민간 기업들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보라는 취지였다.

통신, 인터넷, 게임, 스타트업 대표 기업들이 국가가 판을 깔아준 서바이벌 경진대회에 참여하는 전무후무한 이벤트가 한국에서 벌어졌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형을 지향하는 국가대표 AI 프로젝트는 최신 글로벌 AI 모델 대비 95% 이상의 성능을 목표로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전략과 방법론은 참여 정예팀이 구현하도록 했다.

작년 8월 5개 정예팀이 추려졌을 때만 해도 솔직히 국민적인 관심은 없었다. AI업계 사람들만 아는 ‘그들만의 리그’에 가까웠다. “국내 생성형 AI 시장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내줬는데 이제서야 뭘 한다고…” “정부가 왜 인위적으로 민간 기업들을 경쟁시키지?”와 같은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AI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정부 주도로 소버린(독자적) AI에 도전한다는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국가 주도의 오픈소스(개방형) AI 모델이 해외 빅테크에 대한 의존 없이 국가 전체에 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한국 AI 모델이 미국과 중국이 개발한 모델의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 1단계 평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불거진 ‘중국 베끼기’ 논란과 정부의 황당한 프로젝트 진행 방식은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업스테이지에서 시작된 중국 베끼기 논란은 SK텔레콤과 네이버클라우드로 이어졌고, 결국 네이버클라우드는 정부가 제시한 독자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이버클라우드가 탈락하는 이변이 생기자, 2단계 진출 정예팀이 1곳 부족하다면서 추가 공모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참가선수가 부족하니 ‘패자부활전’을 해서 채워넣겠다는 것인데, 현재까지 네이버클라우드, NC AI, 카카오, KT 등은 재도전 의사가 없다고 한다.

과기정통부가 주도면밀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평가 기준을 제시했더라면 이런 논란도 패자부활전도 불필요했을 것이다. 성능이 먼저인지, 순수 국산 기술이 중요한지 정부는 명확한 목표가 없었던 것일까.

우리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이는 오픈AI, 구글, 앤트로픽, 알리바바, 화웨이 등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어쩌면 이미 승부가 났을 수도 있고, 영원히 그들을 따라잡는 게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자본, 기술, 인력이 열세인데 출발도 한참 늦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세를 극복하고자 정부가 직접 나섰던 국가대표 AI 프로젝트가 기업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결말도 보여주지 못한 채 벌써부터 삐걱대고 있다. ‘세계에서 AI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구현하겠다는 원대한 국정과제가 정부의 실책으로 공염불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설성인 테크부장(seo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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