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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꽂았다… 20억원 꽂혔다

조선일보 강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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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꽂았다… 20억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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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다트? 英선 국민 스포츠

영국인들에게 토요일 밤은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축구 경기를 보는 시간으로 통한다. 하지만 지난 3일(현지 시각)엔 영국인들의 시선이 19세 다트 선수 루크 리틀러의 손끝과 과녁에 쏠렸다. 이날 PDC(프로페셔널 다트 코퍼레이션) 다트 세계선수권 결승전에서 리틀러는 연속 세 발로 정확히 총합 147점을 만들어야 우승을 확정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60·57·30점을 연달아 꽂아 넣는 마법 같은 투구를 선보이며 히안 판 페인(네덜란드)을 세트 스코어 7대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에 이어 대회 2연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포효하는 리틀러를 향해 산타클로스와 수퍼맨 등 각양각색 복장을 한 관중들은 들고 있던 맥주를 뿌려대며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리틀러는 이 대회 우승으로 상금 100만 파운드(약 19억6000만원)를 챙겼다. 이는 1994년 초대 대회 우승 상금(1만6000파운드)의 50배가 넘는 액수다.

다트 세계챔피언 리틀러

다트 세계챔피언 리틀러

맥주와 함께 심심풀이로 즐기던 다트가 이제 어엿한 주류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 티켓 17만장은 사전 판매로 모두 팔렸고,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중계한 결승전은 최고 시청자 수 250만명을 기록했다. PDC는 지난해 스카이스포츠와 총액 1억2500만 파운드(약 2460억원)에 달하는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며 ‘잭팟’을 터뜨리기도 했다. 대회가 열린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 웨스트홀에는 매 경기 3200명의 관중이 가득 찼고, 내년 대회는 최대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레이트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다트가 영국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펍(pub·선술집) 문화가 있다. 영국인들은 동네 펍에 들러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가를 보내곤 하는데 다트는 이 공간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진입 장벽이 낮고, 경기 방식도 직관적이라 처음 접하는 사람도 금세 빠져들기 쉽다.

그래픽=김성규

그래픽=김성규


PDC는 이런 대중적인 게임을 프로 스포츠로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흥행 요소를 도입했다.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팬들은 맥주를 마시며 마음껏 소리칠 수 있다. 복장에 대한 제약도 따로 두지 않아 관중들이 연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영화나 게임 캐릭터, 산타클로스 등으로 분장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홍보 전문가 마크 보르코프스키는 “다트 세계선수권은 영국 최대 음악 축제인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을 보는 듯하다”며 “다채롭게 차려입은 팬들이 선수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모습 자체가 훌륭한 볼거리”라고 말했다.

이런 다트 붐을 상징하는 존재가 세계선수권 챔피언 리틀러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217만명에 달하며, 최근에는 총액 2000만 파운드(약 393억원) 규모의 후원 계약도 체결했다. 미국 ESPN은 “타이거 우즈가 골프를 바꿨다면, 리틀러는 다트를 바꿨다”고 극찬했다.


리틀러의 필살기는 한 번 던질 때 얻을 수 있는 최고 점수인 ‘트리플 20(60점)’ 공략이다. 생후 18개월 때 기저귀를 차고 침착하게 다트를 던지는 영상이 화제가 됐을 만큼 평생 반복 연습을 한 결과 ‘재봉틀’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계 같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폭발적인 득점력 덕분에 루크란 이름을 빗댄 ‘누크(nuke·핵무기)’로 불리기도 한다. 10대라고 믿기 어려운 노안(老顔)은 팬들에겐 오히려 친근한 매력으로 다가오며 호감을 더하고 있다.

다트의 인기는 종주국 영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이번 세계선수권을 찾은 관중의 약 20%는 미국과 아일랜드 등 해외 팬이었으며, 스타 다트 선수를 보유한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는 수백만 명이 생중계를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아진 인기를 반영하듯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도 PDC 다트 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변형 다트의 일종인 소프트다트 대회가 매년 개최되며, 국내외 선수 3500명이 참가한다.

[강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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