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읽는 세상]
공유의 비극과 죄수의 딜레마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읽는 세상]
공유의 비극과 죄수의 딜레마
세상은 때로 게임보다 더 게임처럼 돌아갑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게임판 위에서 벌어지는 경제·사회 현상의 작동 원리를 읽어드립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교수는 게임이론을 이용한 산업과 조직 분석, 법과 계약의 경제적 분석, 진화론적 경제이론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프로야구 구단에는 팀을 대표하는 유명한 선수들이 있고, 이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팀의 성적을 좌우하는 사람은 고액 연봉 선수들이 아니라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뛰는 젊은 선수들이다.
프로야구에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해 8시즌을 채우면 FA 자격을 얻는다. FA 자격을 얻기 전까지 선수는 소속 구단과의 계약에 묶여 있어 이적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실력에 비해 낮은 연봉을 받는 경우가 많다. 프로야구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이러한 젊은 선수들이 몸값 이상의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2022년 6월 1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뉴스1 |
프로야구 구단에는 팀을 대표하는 유명한 선수들이 있고, 이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팀의 성적을 좌우하는 사람은 고액 연봉 선수들이 아니라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뛰는 젊은 선수들이다.
프로야구에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입단해 8시즌을 채우면 FA 자격을 얻는다. FA 자격을 얻기 전까지 선수는 소속 구단과의 계약에 묶여 있어 이적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실력에 비해 낮은 연봉을 받는 경우가 많다. 프로야구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이러한 젊은 선수들이 몸값 이상의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젊은 신인 선수들은 이런 구조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고참 선수들의 고액 연봉을 보전하기 위해 후배들의 연봉이 억제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만들 때 유명한 고참들이 선수 대표로 참석했으므로, 신인에게 불리하고 고참이 이익을 보는 구조가 탄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8년이 지나면 자신들도 자유계약선수가 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렇게 젊어서는 조직에 기여하고 나이가 들어 혜택을 받는 구조를 경제학에서는 ‘중첩세대 모형(Overlapping Generations Model)’이라고 부른다.
이런 중첩세대 모형은 프로야구뿐 아니라 국가 재정의 두 주인공인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에게도 적용된다. 선거권을 가지고 현재 정부 정책을 좌우하는 부모 세대가 정부 돈을 받아 쓰면 그 과정에서 쌓인 정부 빚은 결국 자식 세대의 부담으로 남는다. 하지만 중첩세대 모형에 따르면 자식 세대가 부모가 됐을 때 이들 역시 정부 돈을 받아서 쓰고, 그래서 생긴 빚은 다시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이런 흐름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첩세대 모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자식 세대의 수가 부모 세대보다 많아야 한다. 그래야 큰 부담 없이 부모 세대가 남긴 빚을 감당할 수 있다. 둘째,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잘살아야 한다.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그 자식들의 형편이 어려우면 부모 세대의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부모들이 큰 빚을 남기고 사망하면 자식들이 그 빚의 상속을 거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는 부모가 빚을 내고 싶어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부모가 빚을 안 갚고 사망하면 자금을 회수할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대개 국민들은 정부가 돈을 풀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서 돈을 푼다. 문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돈이 결국 정부가 빚을 내서 마련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정부가 빚을 내서 잔치를 벌이는 셈이다. 개인은 빚을 내서 잔치를 벌이기가 쉽지 않다. 빌린 돈으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다면 이자까지 더해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져 흥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빚잔치는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다. 빚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정부가 돈을 푼다는 것은 정부가 빚을 내는 것이며 그 빚은 결국 국민들이 갚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돈을 푼다고 해서 국민이 마냥 좋아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돈을 풀 때마다 국민 저항이 크지 않은 이유는 중첩세대 모형으로 설명된다. 빚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구조 덕분에 부모 세대는 자신이 당장 갚지 않아도 되는 빚으로 단기적인 수혜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가에서도 학교에 필요한 많은 건물을 지어서 업적을 쌓았다는 총장 중에는 자신의 임기에 착공식만 하고 실제 모금과 건설 작업은 다음 총장에게 넘기는 경우가 있다. 정부의 빚을 자식 세대에게 넘기는 부모 세대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사랑하는 자기 자식에게 빚을 넘기면서 마음 편하게 잔치를 벌일 부모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함정이 존재한다. 바로 경제학에서 악명 높은 ‘공유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다. 마을 공동 목초지에서 마을 사람들이 과도하게 소를 방목하다 목초지가 황무지가 되는 상황을 말한다. 마을의 각 개인이 적당한 수의 소만 방목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욕심을 부려 많은 소를 방목해 곧 목초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 혼자 조심해 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너도나도 많은 소를 방목하게 되고 몇 년 후에는 아무도 소를 키우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부모 세대가 정부의 빚을 자식 세대에게 넘기는 것도 같은 원리다. 만약 내 자식이 친부모의 빚만 책임진다면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는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준다고 해도 이를 마다할 것이다. 문제는 다른 부모들이 정부의 돈을 받으면서 늘어난 빚을 갚을 책임이 내 친자식에게도 지워진다는 점이다. 정부의 빚은 모든 국민의 공동 채무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부의 돈을 받지 않아 내 친자식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더라도 다른 부모들이 이미 정부의 돈을 받아서 늘어난 빚을 내 자식도 나눠서 갚아야 한다. 따라서 개별 부모 입장에서는 정부 돈을 받지 않는 선택으로 얻는 이득이 없게 된다. 결국 정부 돈을 받아 실익을 챙기는 쪽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기라’는 말을 실천하게 되는 상황이다.
아주 우울한 소식은 공유의 비극과 죄수의 딜레마가 유명한 이유가 이것이 중대한 경제적 문제임에도 아직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공유의 비극 현상이 발생하면 경제학자는 “아 큰일이네요. 이거 막을 방법이 없네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정부는 돈을 풀고 부모 세대는 그 수혜를 입으면서 자식 세대에게 빚을 넘기는 현상은 막을 방법이 없다. 다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점차 늘어나면서 부모 세대가 오래 살게 되면 구조상 자식이 부담하게 될 빚을 100세쯤 된 자신이 갚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인간 수명의 연장이 중첩세대 모형과 공유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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